모든 게 완벽한데 저는 힘듭니다.
내 부모에게 채워지지 못했던 애착과 인정욕구는
결혼을 하니 시댁 어른들께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상담 선생님과 매일 앉던 의자에 핑크색 쿠션이 더해져서 더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늘 그렇듯 수요일 오전 10시 나의 심리 상담은 시작되었다.
" 결혼을 생활에 대해 오늘은 이야기해봅시다 "
" 결혼은 언제 했나요? "
"2006년 6월에 했습니다."
"시댁과 친정 분위기는 달랐나요? "
" 네, 많이 달랐어요. 자식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어요. 자유가 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십니다. "
" 부모님의 이혼이나 도연씨의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시댁에서 알고 있나요? "
" 네. 부모님의 이혼은 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말씀드렸고요. 다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십니다."
"시부모에게 부모의 이혼이나 어린 시절 어려웠던 이야기는 참 힘든 일인데... 어떤 계기로 말을 했나요?"
" 저는 처음부터 결혼할 사람이나 결혼할 사람의 집안에서 우리 부모님의 이혼을 문제 삼거나 편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하고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다행히 남편도 시댁도 저의 부모님의 이혼을 존중해 주셨고요."
" 그럼 도연씨에 대해 시댁에서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인데.. 다 알고 계시니 편하시겠네요? 어떤가요? "
" 네. 편안하게 해 주십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좀 적응이 안 됐으나 지금은 그것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압니다. "
" 그럼 결혼 생활은 만족하나요? "
" 네 만족합니다. 저를 이뻐해 주시고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 여전히 힘이 듭니다"
" 뭐가 그렇게 도연씨를 힘들게 할까요? "
" 저를 힘들게 하는 건 타인이 아닌 바로 저 같습니다."
" 무슨 뜻일까요? 자세히 이야기해볼까요?"
" 저는 결혼을 한 후에도 시어른들에게 형님들보다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
" 형님이 계시나요?"
" 네.. 두 분 계십니다."
" 저는 결혼을 하고 서도 완벽하고 인정받고 싶은 병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어요. 결혼이 16년 차인 지금이 되어서 번아웃이 오고 이제야 조금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
" 시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잘 보이고 싶었군요.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
" 아뇨, 전 그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없고 남을 위해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거나 말하지 않았는데 전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 한 번 예를 들어 볼까요? "
거절을 못하는 착한 며느리
시댁은 아들만 셋인 가정으로 당연히 며느리도 셋이다. 그중 나는 가장 막내아들과 결혼한 막내며느리이다. 형님들은 나보다 9~10살쯤 더 윗사람이었기에 나는 자연적으로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되었다. 한 여름에 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가 하루 걸러 하루에 모여 있고 매년 가장 더운 삼복더위일 때이다. 우리 부모님보다 20살가량 많은 시아버지는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켜신다. 물론 일하는 며느리가 더울까 봐 선풍기를 옆에 갔다가 틀어주신다. 하지만 시골 주택에 땡볕이 받을 만큼 받은 집안 온도는 선풍기로도 쉽게 시원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운 바람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 마음이 감사해서 덥다는 말도 못 하고 어머니와 나는 사우나에 간 사람들처럼 땀을 쏟는다. 첫째 형님은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 정도의 먼 거리에 사셨고 둘째 형님은 직장 때문에 바쁘셔서 늘 제사나 김장에는 나와 어머니가 손발을 맞춰서 하고 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나보다 15년 많게는 20년 이상 일찍 며느리가 되었으니 이미 많이 수고를 하셨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결혼 한지 16년이 되어 보니 형님들은 집안 행사에 별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물론 어머니 아버지도 신경 쓰지 않으셨다. 필요이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신경을 쓰고 준비하고 행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우리 엄마 아빠보다 더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 혼자 삼복더위에 혼자 제사를 준비하는 것이 나는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젊었으니 내가 도와드리는 게 마땅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한 해 두 해가 쌓여 16년쯤 되니 나도 고되고 힘들었다. 그 사이에 나도 혼자가 아닌 돌 볼 내 아이가 생겨서 몸도 마음도 그전만큼 여의치 않았지만 나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제사나 김장 시에 일정을 빼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다 5년 전쯤 어머니가 추석 전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셔서 수술을 하셔서 추척을 지내지 못한 해가 있었다. 그 해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 중으로 추석에 아무도 모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추석 이틀 전에 병원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추석에 남편이랑 같이 내려오라고 하셨다. 나는 다시 추석을 할 모양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의 생각은 틀렸다. 아주버님 두 분과 아버지 그리고 우리 남편까지 네 분이서 산소에 올라가 약소하게 절을 하시고 온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애비랑 내려올 때 집에 같이 내려와서 아버지랑 시아주버님 식사를 챙겨주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생전 처음 화가 났다. 그렇지만 시어른들에게 화를 낼 순 없었다.
" 네가 우리 집에서 많이 일을 해봤고 뭐가 어디 있는지 아니까 좀 챙겨 주라고..."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 그동안 도와드린 거지만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형님들은 집에서 쉬고 친정에나 가는데 나는 왜 시댁에 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가서 남자들 밥을 차려 주어야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결국 난 그 해에 처음으로 어머니께 말했다. 저도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고. 아이 아빠가 술이랑 포랑 다 챙겨서 올라간다고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해 놓고도 한 두 달간 정신적으로 힘들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시댁의 일이라면 먼저 나서고 말을 잘 듣는다. 물론 잘 듣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상황이 안 될 때에도 무리하게 나의 계획들을 다 취소하면서 시간을 낸다. 그러고 나면 예전에는 뿌듯하고 기뻤지만 40살이 넘으니 나도 착한 며느리가 하기 싫었다. 점점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늘 하지 않았던 형님들이 못 간다고 이야기하면 알았다고 하신다. 그런데 늘 가던 내가 한 번 못 가게 되면 많이 서운해하시는 것 같다. 아니 나는 항상 되는 사람이었다.
이런 문제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들 때 남편한테 다는 아니지만 가끔 너무 한다 싶을 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남편이 대답은 어이가 없었다.
" 너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마. 하면서 착한 척하지 말고..." 어찌 다른 집안일도 아닌 자신의 집안일을 하는 아내에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나 싶었다.
심리치료를 받고 여러 가지 훈련과 상담으로 나는 번아웃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내가 선약이 있거나 미룰 수 없는 계획이 있다면 안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떤 상황에 처해지면 군말하지 않고 하는 게 착한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을 생각해 오면서 살던 나는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했을 때 시부모님이나 형님들이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나만의 철칙과 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어겨지면 나 스스로가 나를 옭아맸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치를 한 번 깨달은 후로는 나는 나의 아이에게도 무조건 해야 지라던지 착해라는 말을 칭찬으로라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결정해 보고 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나처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살게 될까 봐 그렇다. 예전에는 내 요청에 아이가 싫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냈었다. 예의가 없다고 생각해서 온갖 속담과 옛날이야기를 끌어 모아 아이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럴수록 아이는 나의 말을 잔소리처럼 듣게 됐고 아들과 사이는 멀어졌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한 번쯤은 존중해 주고 넘어가는 습관이 조금 생겼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조금 변했을 뿐인데 그런 작은 시도들과 깨달음은 나와 자녀와의 관계가 회복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자녀도 자녀의 취향과 성향이 있다.
어른이라고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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