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차언니 Aug 10. 2020

월급쟁이 아빠, 육아휴직 하다

반백수 1호의 출현

아내는 임신 기간부터 저혈압과 담낭 문제로 많은 고생을 했다. 게다가 출산을 한 뒤에 육아를 거치면서도 여러 후유증이 생겼다. 디스크와 척추측만으로 허리와 등에 지속적인 통증을 느끼게 되었고, 건강검진을 통해 몸의 내부에도 여러 문제가 추가로 발생한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약물치료, 도수치료, 물리치료, 운동치료를 모두 병행하기를 권유하였고, 이 때문에 양가 식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신세를 질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대안이 필요했다.


그즈음 남편의 회사는 매우 바쁜 상황이었다. 밤늦게 퇴근했다가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늘 육아에 지쳐 있는 아내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잠들어버린 아이의 감은 두 눈을 바라보는 것도 슬픈 일이었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회사 일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점을 자책했었다. 그러면서 다시는 회사 일을 핑계로 가정에 소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비슷한 상황을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남편은 아내의 건강 회복과 가정의 화목을 고려하여 육아휴직을 마음먹었다.





여보, 내가 육아휴직을 쓰면 어떨까?


입 밖으로 의견을 내뱉은 것은 아이가 태어난 지 10개월 정도 된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 식탁에 앉아 아내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남편의 난데없는 선언에 아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지만, 어차피 오랜 고민 끝의 결심이었으므로 그는 아내의 반응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이미 고려해 본 적이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아내에게도 아주 낯선 제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입장에서는 외벌이 가정의 남편 육아휴직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에겐 감당해야 할 수많은 고정 지출이 있었다. 고정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모험을 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금전적인 측면이 최종 결정의 발목을 잡았다.


보통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면 남편과 아내 각각의 타고난 기질이 여실히 드러나곤 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지 않기로 하는 스타일의 신중한 남편에 비해 아내는 '에라 모르겠다.' 식 결정을 내리고 뒤늦게 수습을 해나가는 돌파형의 인간이었다. 다소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아내는 신중한 성격의 남편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지지하였으며, 자신의 스타일대로 신속하게 일을 결정지었다.


오케이!!


긴 대답이 필요하지 않았던 그 밤. 사실 남편은 아내가 단칼에 제안을 거절할 것을 염려하였고, 아내는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조금은 비합리적인 제안을 한 남편의 후회를 우려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든 두 사람은 지혜롭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의기투합하였고, 둘이 함께라면 모든 것은 기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왠지 모를 근자감 같은 것이 불끈 솟아올랐다.




월급쟁이였던 아빠는 이렇게 반백수 패밀리의 수장, 반백수 1호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이전 01화 반백수 패밀리의 탄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