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어렵게 맺은 두 가지 결실을 가슴 가득 품게 되었다. 다복한 가정의 마스코트가 될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났으며, 오랜 기간 공들였던 자신의 첫 저서가 출간된 것이다.
사실 아내의 계획은 간단했다. 출산을 한 후 빠른 시간 안에 몸을 추스르고 업무에 복귀하는 것. 터질 것 같은 만삭의 배를 붙들고도 야근과 주말 근무를 불사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던 그녀였기에, 이런 그녀의 포부에 이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을 비롯한 양가 부모님 모두가 납득하는 사안이었다. 책이 출판되었으니 기세를 몰아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몹시 지당했다.
그러나 아내는 상상 이상의 금사빠였다. 만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아기에게 모든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이 막연한 사랑의 서두를 연 것은 두려움이었다. 아이를 두고 일을 재개해야 한다는 현실을 곱씹을 때마다 울컥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아기의 연약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웠다. 어떤 식으로든 엄마의 부재가 가져다줄 상실감이 겁났고, 험한 세상 가운데 엄마의 꿈을 위해 어린 자식이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그 무렵 근교 어린이집에서 발생했던 사망 사건이 떠올랐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한순간 한순간을 눈에 담지 못한 채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초조함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출산 후의 호르몬 변화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쪼록 아내는 자신보다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자기합리화가 시작됐다. 아내는 나름대로 가성비와 기회비용을 따졌다. 자신이 잠시 꿈을 접으며 느끼는 박탈감과 아이가 누리게 될 따스한 보살핌. 아무래도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 나아 보였다. 어린 시절의 포근한 포옹 한 번이 아이의 미래에 가져다줄 긍정적인 영향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내에게는 잠시 주저앉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때가 된다면 툭툭 털고 일어날 충분한 힘과 의지가 있었으므로.
그래,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지!
커리어에 한해서 남편은 언제나 아내의 편이었다. 그는 아내가 아이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여 언젠가 후회하게 되는 것을 걱정했으나,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현시점 가장 간절한 꿈이라는 이야기에 아내의 결정을 기꺼이 지지해주었다. 이로써 어느 가족의 한시적인 외벌이 여정이 시작되었고, 아내는 남편보다 조금 일찍 반백수 인생의 포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