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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Aug 22. 2020

익숙함이 주는 상처



어느 저녁. 언제나처럼 침대에 몸을 던지고 묵직한 이불을 끌어다 슬그머니 덮으며 문득, 나는 상처 입었다.


날씨를 잊은 듯 여전히 두터운 이불, 몇 달째 완독 하지 못한 채 협탁에 방치된 책 한 권,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공허한 공기의 여백. 어쩌면 나의 괴로움은 이것들로부터 시작되었을까. 어느 날에는 분명 소소한 행복으로 여겨졌을 것들이, 한순간 날 선 예민함이 되어 마음 한을 난도질한다.


익숙함이라는 녀석은 늘 이런 식이다. 나긋나긋한 모양새로 찾아와 한 사람의 의식을 서서히 잠식해 버리나 싶다가 종래에는 독립 개체로서의 존재감마저 모조리 앗아가고 마는 것이다. 고한 자유의지 지 사람일지언정 이 녀석을 쉽게 제압할 재간은 없을 것이다,라고 내가 겪는 생경한 통증을 조심스럽고도 거창한 문장으로 덧씌운다.


흐트러진 이불은 고단함을 품었다. 견뎌냄과 버텨냄의 훈장들이 그 속에 켜켜이 쌓이고 더덕더덕 덧붙어 삶의 무게를 흉내 내었다. 가슴팍을 지그시 누르는 묵직한 책임감은 나의 하루가 쉬이 잠에 들도록 돕는 수면제지만, 돌연 깊은 잠을 방해하고야 마는 훼방꾼 되어버렸다. 미지의 어떤 것을 저어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홀연 눈 뜨 니 말이다.


협탁을 더듬어 책을 집어 든다. 흐릿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페이지는 전일과 동일한 곳. 눈꺼풀에 새겨진 혼탁한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의식 없이 글자를 읽어 내려간다. 낮은 톤으로 읊조려진 활자들은 낱낱이 흩어져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고, 언어의 파편 온기의 민낯을 예리하게 할.


    , 외로움인 듯 괴로움인 나의 흉터는 이렇게 하루만큼 더 여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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