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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pr 10. 2024

가족이란

 큰소리 뻥뻥 치고 법정을 나왔으나 지아도 찝찝한 소송이었다. 우선 지아 스스로 의뢰인의 의도가 순순해 보이지 않았고 며칠 전 만나본 요양보호사는 굉장히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리한 증인인지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출석할지도 미지수였다.      


 판사 말대로 원고를 설득하는 게 바람직한가, 고민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 화면에 ‘엄마’라는 글자가 떴다.     


 “여보세요?”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은영이니?

 “네. 어~ 엄~마…….”


 엄마라고 부르기까지, 그 찰나가 억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딸이 사라진 걸 모르는 엄마에게 딸인 척하는 것이 죄스러웠다.


 주춤거리고 있는데 건조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건너왔다.    


 -너 이번 달 생활비를 아직 안 보냈더라? 엄마가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해야겠니?     


 은영의 엄마는 통화가 되자마자 대뜸 돈이야기부터 꺼냈다. 송구스러웠던 마음이 부끄러울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아. 좀 바빴어요.”

 너무 당황해서 변명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네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사업한다고 애쓰는 은석이 만큼 바쁠라고.     


 이건 또 뭔 상황?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기에 은근히 기대했다. 순간적으로 엄마가 살아있는 은영이 부럽다는 생각마저 했는데…….      


 은영의 엄마는 돈을 안 보냈다는 이유로 날카롭고 비난 섞인 말투로 일관했다. 아무리 급해도 딸의 안부부터 물어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이례적인 엄마의 태도에 놀라며 지아는 버는 족족 몽땅 돈을 써버렸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했다. 너무 사치스럽다고 혼난 적은 있지만 지출에 대한 다른 간섭은 없었다. 젊을 때는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라는 것이 부모님의 지론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지아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였다. 기분이 확 상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은영의 가족관계인 것을.     


 “네. 오늘 중으로 보낼게요.”

 -알았다.     


 돈을 보내겠다는 말에 엄마는 다소 누그러진 태도로 전화를 끊었다. 채권자에서 잠시 엄마로 전환된 음성이었다.     


 마음은 상했으나 은영이 하던 일에 차질이 생겼으니 지아가 수습하기로 했다.


 사무실 책상에 앉은 지아는 컴퓨터 모니터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은영의 계좌에 어떻게 접속한다?


 설마 변호사등록번호가 비번일까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신분증에 적힌 번호를 입력했다.      


 헐~~     


 바로 계좌가 열렸다. 지아는 은영의 성격을 알아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이런 무신경함을 어찌할꼬. 아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까? 지아가 찾아야 할 퍼즐이 간단하니 말이다.


 여하튼 지아는 계좌를 들여다보았다. 얼마를 보내야 하나 확인해야 했다. 지출내역을 살피는데 이상하게 눈앞이 흐려졌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구역질이 났다. 그때 봉인이 풀리듯 스르륵 은영의 기억 일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릴 적 은영의 장래 희망은 작곡가였다.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것은 옆집에 있던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부터였다.      


 방과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벽을 통전해오는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뚱땅뚱땅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아이들이 부러워 몇 달간 엄마를 졸라 학원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학원에 간 은영을 피아노 선생님이 남달리 예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은영은 절대음감을 타고났고 한 번 들은 곡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재주가 있었다.      


 게다가 중학생 때 재미 삼아 만든 곡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었다. 재능을 높이 평가한 선생님은 은영에게 제대로 작곡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리하여 은영은 작곡과를 진학할 준비를 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고꾸라지는 바람에 예술 쪽은 접어야 했다. 비용이 많이 들어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은영의 선택지는 국립대를 장학생으로 진학하거나 대입을 포기하고 바로 취업하는 것으로 좁혀졌다. 절박해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타고난 두뇌 때문인지, 고3이 되었을 때 은영의 성적은 놀랍게 향상했다.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 같아 기뻤다. 은영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공부에 대신 쏟아부었다. 집안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언젠가 작곡가의 길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늦지 않게 다시 음악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은영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언젠가가 영영 오지 않을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졸지에 은영은 가장이 되었고 어린 동생과 살림만 하던 엄마를 돌봐야 했다. 사법연수원의 교수님들은 은영이 법관이 되길 바랐지만, 현실은 그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은영은 돈을 벌어야 했다. 동생은 틈틈이 사고를 쳤고 합의금 명목으로만 수천이 들었다. 은영은 그 돈을 갚기 위해 임용을 포기했고 로펌에 입사하고 닥치는 대로 사건을 처리했다.      


 한창 예민한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동생의 방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동생은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곧바로 다음 문제를 만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선 사업을 한다며 이것저것 일을 벌였고 사기를 당하고 말아먹기를 반복했다. 은영의 수입이 늘어나도 남는 것이 없었다.     


 어느 순간 은영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이면 동생은 영영 자립할 수 없을 것이다.      


 은영의 도움은 동생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했다. 그 때문에 은영은 동생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은영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생활비 명목으로 요구하는 돈도 점점 커졌다.  


 “너는 서울에, 그것도 궁궐 같은 집에 살면서, 어쩜 가족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아이고. 아이고. 저 혼자 잘나서 큰 줄 아는 게야.”     


 투둑. 투둑.     


 예상에 없던 눈물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 휴지를 찾는 동안 볼을 타고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한참을 흐느낀 후 지아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계좌 내역을 살폈다.  


 은영은 매달 엄마에게 월급의 반을 송금해오고 있었다. 가끔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목돈도 보냈다.      


 하아. 얘도 참 팍팍한 인생을 살아왔구나. 지아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     


 명섭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예~~ 오늘 재판이 우찌 되었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다음 기일에 요양보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네. 그런데 그분이 사정을 잘 알면서도 자꾸 딴 소리를 해 싸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다른 증인은 없을까요?”     


 -작은아버지가 그나마 사정을 알고 계세요.

 “다행이네요. 그럼 작은아버지도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참.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아버지의 재산을 나눌 당시에 선생님은 왜 그렇게 적게 받는 것에 동의하셨어요? 형이나 어머니에 비해 너무 적게 받으셨던데요.”     


 -아. 그거요? 어머니가 형이 장남이고 제사도 모시고 하니 많이 주라고 했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어차피 나중에 우리한테 물려줄 거니까 많이 가져가셨지요.


 “불편하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 외부에서는 선생님께서 뒤늦게 재산분할에 불만을 품고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볼 여지가 다분합니다. 혹시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거 맞아요. 재산을 나눌 때 저는 딸아이만 둘이고 형은 아들이 있으니 그려려니 했던 거예요. 변호사님도 아시겠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손에 대한 우대 같은 게 있잖아요. 제사 문제도 그렇고. 저도 그 정도에서 이해하기로 했어요.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 전에 형이 둘째로 또 아들을 낳은 거예요. 저는 아들 둘만 있으면 형이 나중에 좀 쓸쓸할 텐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요즘 세상엔 딸이 더 효도하는 거 변호사님도 아시잖아요. 그랬는데 손자 둘이 생겼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자신이 받은 재산을 몽땅 형에게 줘버렸어요. 그게 정말 서럽고 섭섭했어요.


 처음부터 형이 많이 가져갔는데 어떻게 어머니가 나머지 재산까지 몰아줄 수 있는지 이해됐어요. 게다가 클 때부터 차별이 심했거든요. 뭐든지 장남이 우선이고 저한테는 애정이 없었어요. 어머니한테는 큰아들이 세상의 전부였죠.


 아부지가 아플 때도 형에게 미리 재산을 넘겨주라고 닦달했고 치료비로 재산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봐 아부지에게 악을 쓰곤 했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돈을 받는 것보단 이제까지 해온 행태가 괘씸해서 반성 좀 하라고 소송을 한 거예요.


 “아.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많이 속상하셨겠네요.”     


 -변호사님예~~ 사실 이기기 어려운 소송인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는 화병이 생길 것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통화를 마치자 지아는 명섭 씨와 은영의 가족관계가 오버랩되었다. 마음이 착잡해졌다.      


 드라마에 곧잘 등장하는 단란한 가족은 현실에선 정녕 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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