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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pr 05. 2024

다시 한번 용기 낼 때

 선생님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시를 망치는 법에 대해 알아보자고 했다.    

 

 시 쓰는 법도 모르는데 망치는 법이라니…….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빨라서 힘들어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고수들 사이에 낀 초짜를 배려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다간 계속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지지난 주 15화에서 겨우 용어 정리를 했구먼. 쩝).  

   

 다행히 수업을 듣고 나선 ‘말씀만 그랬지. 제대로 시 쓰는 법을 알려주신 거구나’ 하고 안심했다. ‘반면교사로 삼아 시 쓸 때 참고해야지’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시를 쓸 수가 없었다. 이제껏 내가 쓴 건 시라기보단 시의 형식을 빌린 단어의 나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세 줄로 시 한 편 가능하다는 말에 혹해 생각나는 대로 마구마구 썼던 것인데. 지금까지 내가 뭔 짓을 했던가.      


 앞서 공개했던 자작시를 떠올리니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를… 이제까지야 그렇다 치고 앞으로는 또 어쩌나… 걱정이 태산 같았다.     


 몇 주간 시를 앓았다. 아무리 고쳐도 뭔가 이상하고 미진했다. 순서를 바꿔봐도 표현을 달리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몇 주간 지속되자 선생님이 물었다.      


 “바람씨, 요즘은 왜 시를 안 가져와요?”

 “아. 그게. 마무리를 못 지어서요… 다음 주엔 꼭 제출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선생님은 가볍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순간 ‘가슴앓이’의 멜로디와 가사가 떠오르는데 마치 나를 위해 만든 곡처럼 느껴졌다. 현재 나의 마음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하긴 어려울 터였다. 아 어쩌란 말이냐~~~     


 넋두리는 이쯤에서 마치고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시 한 편을 읽어보자.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다만     


나뭇잎이 매달려 있다

떨어지지 않을 거야

안간힘을 다해 가지를 붙든다     


바람이 얇아진 몸뚱이를 툭 친다

바스락바스락 흔들리다 기억해 낸다 처음 세상에 뛰어든 순간을

하늘을 밝힌다는 해와 달이 궁금해

날개를 접었다 펴며 원을 그린다는 나비 한쌍이 보고 싶어

아프지 말라 꽁꽁 싸맸던 껍질을 벗어던졌다    

 

빛나는 해와 별보다 흐린 하늘이 가깝고

나비의 춤보다 옆구리를 갉아먹는 벌레가 먼저란 걸 모르고

생의 알맹이가 그렇게 여린 줄 모르고     


바람이 버스럭거리는 몸뚱이를 또 한 번 차갑게 때린다

잠깐의 촉촉함 잠깐의 반짝임을 뒤로하고

두려움에 중독된 잎이 버둥거린다     


가지 대신 용기를 붙들 때까지

깃털보다 가벼운 잎이 새 보다 멀리 날아갈 때까지

바람이 데려가는 대로 실려 갈 때까지

다시, 세상 속으로 뛰어들 때까지      


    

여러분은 이 시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

.

.

.

.

.

.

 판단이야 자유지만 좋다고 생각했다면 시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그럼 이 시는 왜 나쁜가?     


 우선 잘 읽히지 않고,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이 안 되며, 특히 2연과 3연에서 앞뒤 문장의 연결이 안 된다. 덧붙여 화자의 시점도 모호하고 지나치게 관념적이다.


 선생님도 습작시 몇 개를 보여주며 위와 같은 질문을 했었다. 나는 예시로 본 시들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시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쪽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그 시들의 문제점에 대해 위와 비슷한 비평을 들었다.      


 예상했겠지만 맞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다만 내가 몇 주간 고치고 고치다 마무리 짓지 못한 바로 그 시다. 누군가의 습작시를 쓸 수는 없어서 나의 졸작을 교보재로 소개한 것이다. 시에 대한 평가는 나의 첫 독자인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럼 이제, 시를 망치는 법을 배운 자로서 위 시의 문제점을 찾아보겠다.


 우선 화자의 시점에 일관성이 없다. 처음엔 화자가 나뭇잎을 관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나뭇잎 자체가 되어 버린 듯도 하다가, 결국은 전지적인 위치에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두 번째 문제는 현재, 과거, 미래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았다는 이다. 원래 의도는 1, 4연 현재, 2연과 3연은 과거, 5연을 미래로 쓰는 것이었는독자가 이것을 한눈에 알아보긴 힘들다.      


 세 번째는 독자가 납득할 만한 논리적 흐름이 부족하다. 내 머릿속의 지도야 분명하지만 아무 정보도 없이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갑툭튀처럼 느껴질 수 있다. 불친절하게 쓴 글은 시의 본질인 형상화에서 거리가 멀어 가독성을 떨어트린다.


 결과적으로 시점을 마구 섞어 쓰고 시제의 이동이 잦고 충분한 설명이 없는 망친 시가 되었다.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고 이미지가 흐릿하다. 그야말로 횡설수설 뒤죽박죽.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에게 시를 보여주기 전까진 내가 쓴 시에 혼자 감동해서 울먹거렸다. 흠흠.     


 뒤늦은 변명이지만 위 시는 ‘괴로워하면서도 익숙한 현재를 붙들고 있는 누군가에게 어릴 적 용기를 기억해 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쓴 것이다. 너는 아주 용기 있는 아이였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주제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나 자신.'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자유롭게 살라고. 바람이 알아서 데려다줄 거라고. 내가 나를 달래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딱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는 시가 되었다.


 처음의 용기(세 줄이면 시 한 편 쓸 수 있다던 무대뽀 정신)를 기억하고 망한 시에 그만 연연하라. 그리고 다시 시를 써보라.


 표현은 망했지만 메시지는 참 좋다. 일단은 이것으로 만족!      



*계속 시를 못쓰고 있어서 아쉬운 마음에 울 냥이 사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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