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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pr 12. 2024

시를 망치지 않으려면…


 지난 17에서 망친 시를 분석해 봤으니 이번에는 시를 망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화자’라는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시를 쓸 때 생기는 많은 문제가 이 ‘화자’를 잘못 다루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화자(話者)는 문자 그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이제껏 시인이 화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시 속에는 시인이 없다”고 했다.


 독백 형태의 시가 많다 보니 시에서의 ‘나’를 시인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영화로 치자면 시인은 감독, 화자는 배우에 해당한다.      


 시인은 무대에 직접 오르지 않고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끌어갈 뿐이다. 화자를 시인의 아바타 내지 대변인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화자를 어떻게 다뤄야 시가 망하지 않을까.      


 첫째, 화자와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 간의 거리가 분명해야 한다.      


 화자가 가까운 대상을 볼 때와 먼 거리의 대상을 볼 때 파악해 낼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그러므로 화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알 수 있는 내용만 언급해야 한다.      


 바로 눈앞의 꽃에 대해 말할 때는 꽃잎 몇 장, 수술 몇 개까지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지만 산꼭대기의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뭇잎의 잎맥을 논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화자를 사람이 아닌 사물로 상정했다면 그 사물의 입장에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벽 속에 박혀있는 못’ 화자라면 볼 수는 없고 들을 수만 있는 상황이므로 시각적인 표현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둘째, 화자의 시선이동은 단조로워야 한다.      


 만약 화자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인다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좌측에서부터 우측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반대 방향도 마찬가지). ‘멀리 갔다가 가까이 왔다가 다시 멀리 갔다가’ 혹은 ‘우왕좌왕’하면서 시선이 복잡해질 경우 이미지를 뚜렷하게 전달할 수가 없다. 당연히 독자도 함께 헤매게 된다.      


 셋째, 화자가 과거를 회상한다면 구조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과거를 액자 속에 집어넣듯 현재와 확실하게 구분해야 독자의 이해가 쉽다. 그리고 과거를 떠올리게 된 계기를 납득할 정도로 설명해서 맥락을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넷째, 화자 자신의 공간적 이동이 있을 때는 화자가 본 것과 생각한 것을 순차적으로 나열해야 한다. 산 밑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면 중간에 이상한 곳에서 방황하지 말고 차례차례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너무 잦은 이동은 독자를 혼란케 하므로 자제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별것 아닌 듯 하지만 막상 시를 쓸 때 적용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지난주의 망한 시를 아직 살리지 못한 걸 보면 처음부터  문제없도록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한 팁이 있다면?     


 하나의 시에 너무 많은 내용을  것.


 나의 경험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면 문제생겼다. 그러니 사소하고 작게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오류를 막는 방법이다.      


 여기까지 읽고도 왜 화자의 위치와 시선이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분이 있다면 또 다른 나의 선생님(본 투 비 문학소녀인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언니야.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건 대사가 조금 허술해도 주변 환경을 보여주는 영상, 배우의 독특한 매력, 적절한 배경음악으로 감독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있어.     


그런데 시는 그렇지 않지. 몇 자 안 되는 단어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거든. 그 때문에 시는 독자가 바로 눈앞에서 보듯 이해하도록 써야 해.      


독자는 화자의 눈을 따라가면서 시를 읽는데 화자의 위치와 시선이 불명확하면 독자는 시에 몰입할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떤 시점에서 시를 써 내려갈지가 굉장히 중요해.     

 

화자가 누군지 모르겠고 어디에 있는지 파악이 안 되면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시를 읽지 않아. 타인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들일 사람은 흔치 않거든.      


가만있자. 언니야한테 도움이 될만한 시가 있었는데~~ 아. 생각났다. 유치환의 행복이라고.


 시는 화자의 위치와 대상이 선명하게 보여서 작가의 메시지가 잘 전달돼. 그래서 내가 참 좋아하는 시야. 언니야도 한 번 읽어봐.”           


 동생의 말을 듣고 '행복'을 읽어보았다. 우체국 한편에 앉아 사랑하는 대상에게 다양한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이 눈앞에 서성거렸다. 그리고 사랑을 담아 편지를 쓰는 화자도… 화자의 마음도… 바로 그려졌다.


그 느낌을 여러분과 함께 했으면 해서 유치환 님의 '행복'을 인용해 본다.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올해도 일락이(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생긴 친구)가 활짝 피어 행복하네요.


 집필실에 향기가 가득합니다.


 라일락 향기를 부칠 수 있는 우체국이 있다면 좋겠어요. 여러분께 배달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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