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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r 29. 2024

제목이 중요하다고요?

 지인들에게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하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있다.     

 

 “제목이 뭐야?”     


 질문을 받은 나는 “제목은, 뭐, 바뀔 수도 있고……. 아직 가제에 불과해서 말이야”라며 얼버무렸다.   

   

 이 질문이 한두 명에 그쳤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어떤 내용이냐?’가 아니라 제목이 뭐냐고부터 물었다.      


 내용이 중요하지 다들 왜 제목 가지고 저럴까? 나는 사람들이 이상했다.     


 그러나 새 학기 첫 수업(한 분기 시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학기도 등록했지요. 연재를 계속할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을 시작으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손님이 간판을 보고 식당에 들어갈지를 정하는 것처럼, 독자가 시를 읽을지 여부는 제목에서부터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지요. 너무 흔하고 평범한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신선한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해서 독자를 끌어당기지요.”      


 아.      


 이래서 사람들이 제목! 제목! 했던 거였나. 제목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애초에 읽지 않는구나. 글의 제목은 사람으로 치자면 첫인상과 같은 거였구나.      


 뒤늦게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막 지은 제목으로 글을 올리면 브런치 조회 수가 현저하게 떨어졌다(원래 낮은데 더 낮아졌다는 의미임).


 내 글이 그렇게 별로인가, 고민하면서도 이제껏 제목에 대해서는 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선생님이 종종 학생들의 시 제목을 문제 삼았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제목을 바꿔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를 귓등으로 흘렸던 순간을 돌아보며 후회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라 '좋은 제목 만들기'에 힘쓰마음먹고 제목을 지을 때 고려할 사항들을 정리해 봤다.      


 ‘제목’은 우선 시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국숫집 간판을 걸고 국밥을 팔면 음식점을 찾은 손님이 당황하는 것처럼 시의 제목도 시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독자는 어이가 없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낄지도…     


 따라서 제목은 시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할 수 있다. 주의를 가지고 시집을 읽어보면 실제로 시의 내용을 포괄하는 제목이 대다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 제목이 내용의 부분이거나, 내용과 연결되거나, 내용의 은유나 상징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와 달리 내용과 반대되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는데 이는 시의 의미를 확장하는 결과를 노릴 때 효과적이다.


  이 지점에서 류시화의 시 한 편을 소개하겠다.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이 시는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동생으로부터 선물 받은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라는 제목의 시집에 수록된 세 번째 시이다.      


 당시 나는 마음이 무척 힘든 상태였는데, 꽃샘추위에 시달리는 너는 곧 꽃 피울 것이고, 그 꽃을 맨 처음 보는 이가 꽃나무 자신이라는 것이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다소 샛길로 빠졌는데 이 시를 소개한 이유는 먼저 아래 인용할 ‘제목’의 예시가 모두 같은 시집 소속임을 밝혀두기 위함이다.      


 그리고 ' 시의 제목'이 시부분이면서 내용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시의 내용을 포괄한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서이다. 심지어 이 제목은 시집 내용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특히 좋은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내용과의 연관성을 살펴봤으니 다음으로 제목의 형태에 관해 알아보겠다.    

  

 제목은 형식 차원에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형태는 사물, 장소, 관념 등의 이름을 제목으로 정하는 명사형 제목이다.      


 이는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초대, 선운사 동백, 원, 떨림, 제비붓꽃, 아마릴리스, 숨바꼭질, 포옹, 비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나는 ‘초대’라는 제목을 봤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깊은 울림을 느꼈다.      


 시집의 첫 시로 ‘초대’를 선정한 시인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제목에서부터 전해지는 감응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초대’라는 단어가 좋았던 걸까.      


 여하튼 이렇게 명사형으로 제목을 지을 경우, 제목에서 여운과 무게감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 형태는 완결된 문장으로 제목을 붙이는 방법이다. 그 예로는 ‘나는 투표했다’,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를 들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이런 제목은 시선을 확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내용이 뭘까? 시인이 어떻게 이 메시지를 풀어나갈까? 궁금증이 폭발한다. 게다가 명사형보다 핵심적 내용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론 이런 형태의 제목이 가장 신선하고 멋스럽게 여겨진다. 문제는 이런 제목을 만들기가 무진장 어렵다는 것. 여러 번 시도해 봤으나 아직은 실패 중이다.     


 세 번째 형태의 제목은 완결되지 않은 문장으로 쓴 열린 제목이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쇠올빼미가 새끼 올빼미에게’, ‘그러하기를’ 같은 것이 좋은 예가 된다.      


 이런 제목은 시인이 제시한 어떤 사안에 대해 독자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짧게나마 제목에 대한 고민을 공유해 봤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시에 대해 조금씩 배우면서 시 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이제까지 쓴 습작을 시라고 부르기가 점점 부끄러워진다. 제목까지 고민하니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그리하여 이번 화는 자작시 대신 고운 언어로 벼려진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시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 시에서 여러분도 명사형 제목의 장점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초대     

            

                 류시화   

  

손을 내밀어 보라

다친 새를 초대하듯이

가만히

날개를 접고 있는

자신에게

상처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

언 꽃나무를 초대하듯이

겹겹이

꽃잎을 오므리고 있는

자신에게

신비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

부서진 적 있는 심장을 초대하듯이

숨죽이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에게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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