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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19. 2024

잠들지 못하고

 띠리리릭. 전화벨이 울렸다. 대표의 전화였다. 지아는 바로 수화기를 들지 못하고 한번 숨을 내쉰 후 전화를 받았다. 이제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대표의 전화는 껄끄럽다. 또 무슨 일일까 싶어 부담스럽다.   

   

 “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마음과 달리 산뜻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 아. 김변호사. 삼사각형 기업 알지요?

 역시 대표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훅 들어갔다.     

 

 “그럼요. 저희가 고문해주고 있는 기업을 말씀하시는 거죠?”

 - 거기 이사님 아들이 학교폭력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하네요. 애들끼리 놀다가 누가 좀 다친 모양인데 김변이 처리해 줬으면 좋겠어요. 박 차장 편으로 관련 자료 보내 놓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     


 주말 새벽이었다. 지아가 거실 창가에 놓인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오다 이를 발견한 수민이 잔소리를 해댄다. 지아에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잔소리였다.   

  

 “아이고. 깜짝이야. 너 왜 불도 안 켜고 그러고 있어? 잠이 안 와? 뭔 일 있어?”

 수민의 출현으로 어스름에 침잠해 있던 공기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밖이 예뻐서 보고 있었지.”

 영혼 없는 대답에 수민이 욕실이 아니라 지아 곁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어두컴컴하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 구만.  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냐? 은영.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어? 응. 새로 맡은 사건이 머릿속을 뱅뱅 돌면서 떠나가질 않네.”


 “워라밸을 추구하자며~ 벌써 생각이 바뀐 거야?”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의뢰인을 만나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졌어.”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건 우리들의 숙명이잖아. 근데… 나야 그렇다 치고, 넌 갑자기 왜 그래? 십 년 넘게 일하면 괜찮아질 법도 하지 않나? 네가 그러면 나 정말 무서워진다고. 나의 미래가 너라면 당장 이 일을 때려치워야 해. 나한테 지나친 감정이입하지 말라던 네가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수민이 호들갑을 떤다.    

  

 “그러게 말이다.”

 “김은영 변호사님. 당신이 지금까지 저에게 해왔던 말씀을 당장 돌려드리겠습니다. 사건에 집착하며 좌우하려 들지 마시오. 그러다가 병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겁니다.”     


 수민의 말에 지아가 피식 웃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말문이 열렸다.

 “고 1짜리 애들이 모여서 한 애를 때렸어. 무릎 꿇려놓고 가슴팍을 차고 쓰러진 애를 밟았어. 골프채를 쓰기도 했다네. 피해 학생은 갈비뼈가 부러졌고 그 외에도 많이 다쳤어. 치료 때문에 몇 달째 학교에 나오지 못했데.”

 “죄질이 상당히 나쁘구먼. 쪼꼬만 것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집단에 흉기까지? 심각하네.”

 “내~ 말이~ 그 말이야. 성인이었으면 얼마나 형이 무겁겠어.”     


 “그건 그렇고 우리는 어느 쪽이야? 피해자?”

 “아니. 가해자.”


 지아의 대답을 들은 수민이 말없이 지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골프채의 출처를 물었다.      

 “그런데 골프채는 어디서 생겼데? 야구 빠따도 아니고…”

 “에효~~ 그게… 우리 의뢰인 거라는데……. 본인이 직접 휘두르진 않았지만 범죄의 수단을 제공한 거지.”


 수민이 더욱 애처로운 눈길로 지아를 보았다.

 “그래서, 상담은 해봤어? 의뢰인이 뭐래?”

 “어제 가해 학생과 어머니가 사무실로 찾아왔는데 상황이 안 좋아. 어머니와 대화가 전혀 안 돼. 내 이럴 줄 익히 알고 있으면서 매번 대표님께 당한다. 가벼운 사건인 척하면서 따로 전화하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말이야.”     


 “대표님이야 그렇지.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장은 직원의 맘을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아? 그래야 규모도 키우고 사건도 많이 하겠지?”

 “그렇긴 하지. 근데 그 어머니가 음모론을 이야기하시잖아.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닌데 다른 애들 꼬임에 곤란하게 되었다면서 하소연만 하시는 거야. 아이는 입 꾹 다물고 끝까지 한마디도 안 하고…….”

   

 “피해자와 합의는 했데?”

 “아니. 그게 문제야.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합의한 상태인데 우리 의뢰인만 합의를 못 했어. 어머니 말론 피해자 쪽에서 너무 큰 금액을 요구했다고 하네.”     


 “얼마를 불렀길래 그래?”

 “내가 보기엔 금액의 문제가 아니야. 협의하는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상한 거지. 주동자에 해당하는 아이가 삼천만 원으로 합의한 걸 보면 피해자 측이 무리한 요구를 했을 리가 없어. 우리 학생은 다른 애에 비하면 단순 가담자 정도의 행위 태양이었거든.”     


 “그러면 가해자 부모의 태도가 문제였을까?”

 “아마 그런 것 같아. 피해 학생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들먹거린 듯 해. 아마도 학교 폭력대책 심의 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부모님이 잘못 말한 것 같아. 피해 학생을 비롯해서 다른 아이들 탓만 했을 거야. 어제 태도로 봐서 위원들에게 충분히 나쁜 인상을 줬을 것 같아. 그도 그럴 것이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에게 돈을 좀 빌렸던 모양이야. 그런데 약속한 날짜에 못 갚으니까 두 배로 갚으라고 했고 그렇게 몇 달 지나면서 갚을 돈이 엄청나게 불어난 거지.”     


 “얘들이… 이자제한법을 무시했구먼.”

 “그 정도가 아니야.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지불 각서를 쓰고 또 그걸 단톡방에 공유도 했어. 알고 보니 피해 학생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리고 못 갚길 반복한 거지. 그 바람에 약속을 안 지키는 애라고 낙인이 찍힌 거야. 하여간 복잡해. 그러다 보니 우리 의뢰인도 제대로 된 사과를 안 했던 것 같고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거지.”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상황이야?”

 “가해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학급교체 조치를 받았는데 피해 학생 측에서 전학으로 변경하는 재결을 청구했고 행정심판위원회에서 그 청구를 받아들였어. 의뢰인은 전학의 취소를 원하는 상태지.”

    

 “전학으로 변경하게 된 이유가 뭐야?”

 “피해 학생의 외상 정도가 심해. 후유증이 우려되고 PTSD도 심각하고… 폭력과 따돌림이 지속적이었고 SNS상에 피해 학생과 관련하여 유포된 게시물이 상당히 많아. 게다가 가해자가 일부 행위를 부인하는 바람에 반성을 안 하는 것으로 보여서 학급교체로는 피해 학생의 보호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거지.”     


 “골치 아프네.”

 “그렇지. 수민아. 넌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당사자의 행위가 반사회적이라고 여겨질 때 그 사람을 대리하거나 변호하는 일에 대한 어려움 같은 거 말이야.”      


 지아의 질문에 수민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은영~~ 스트레스받는 건 알겠는데 너 변호사잖아.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권을 보장하고 있는 이유가 뭐겠어? 국가에서 돈 들여서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주기도 하잖아. 잘못을 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인 진실을 밝혀야 하고 나름의 사정을 주장할 수 있는 방어권은 보장되어야 하지.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변호사가 투입되는 것은 그런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거잖아. 너 왜 직분을 망각하고 그래? 게다가 이번 사건의 당사자는 미성년자잖아. 교육과 선도라는 측면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거 아냐?”      


 듣고 보니 그랬다. 수민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지아는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남았다. 동시에 자신은 변호사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은영의 세계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아침밥이나 먹자. 머리 싸맨다고 해결되는 건 없잖아.”

 수민이 강아지 달래듯 지아의 정수리를 쓰다듬더니 부엌으로 향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몰래 솟아오른 태양이 눈앞을 밝혀 어둠에 가려져 있던 세상이 제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     


 그날 오후 2시. 수민이 가고 싶다던 발레 학원 건물에 도착했다.     

 

 “집에서 두 블록밖에 안 되네. 산책하기에 딱 좋구나. 걸어서 다니면 되겠다.”

 “응. 그러네.”


 활기찬 수민과 달리 여전히 영혼이 가출한 상태로 지아가 답했다.      

 “이야~ 여긴 1층에 커피숍이 있고 헤어숍까지 있잖아. 끝나고 음료수 한잔 마시고 머리도 다듬고 가면 좀 좋아?”

 “응. 그러네.”     


 “은영. 너 지금까지 내 이야기 안 듣고 있었지?”

 “아냐. 그럴 리가…”

 지아가 주눅 든 모습으로 우물거렸다.     


 “야. 그럼. 내가 방금 전까지 뭐라고 했는지 말해봐.”

 “어~ 음~ 음료수 마시고 머리 다듬자고 했잖아??”     

 “어이구. 눈치는 빨라 가지고. 이번만은 용서하겠어. 그러니 은영~ 그만 인상 펴. 걱정은 문밖에 내버려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자.”

 수민이 앞장서며 말했다.       


 그때 원피스 아래로 눈에 익은 분홍색 발레 타이즈를 신은 여자가 다가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여자도 함께 탔다. 세 명이 겨우 탈 만큼 작은 엘리베이터는 보기와 달리 빠른 속도로 그들을 3층까지 데려다주었다.      


 어리둥절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서 맞은편에 있는 학원 입구를 보았다. 눈부신 조명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고 출입문 바로 옆 벽면에 강사들의 프로필이 붙어 있었다. 이제껏 수민이 그렇게 강조해 왔던 우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사진이었다.     


 같이 올라왔던 여자가 유리문을 밀치고 학원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문틈으로 음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 익숙한 소리. 지아는 지금까지 짊어고 있던 걱정을 문밖에 버려두고 수민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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