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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r 13. 2024

직장생활이 다 그렇지, 뭐

 민우는 법정 휴정기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나왔다. 변협 온라인 연수를 들을 요량이었다.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수업이 있었고 실력을 키워야 하는 분야가 많았다. 이제 겨우 신입 티를 벗어난 탓에 휴가를 가는 것이 오히려 불편했다.      


 동기들은 장기간의 휴가를 그따위로 보내냐며 타박했다. 하지만 민우가 휴가를 즐기지 못한덴 다른 사정도 있었다.      


 자신의 사수인 김은영 변호사 때문이었다. 함께 일한 첫해만 해도 남자인 자신보다 더 건강했던 사람이 최근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상태였다.     


 민우가 휴가를 포기할 정도로 그녀의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민우는 이 년 전 KNG에 입사하면서부터 그녀의 어쏘로 일해왔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여전한 변호사 업계에서 그녀를 사수로 둔 것은 민우로선 엄청난 행운이었다.      


 우선 그녀는 KNG의 양대 쌍벽 중 한 명으로 마치 법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탁월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불패 신화 김변’을 줄인 ‘불김’일까. 그 덕에 민우도 덩달아 법인 내에서 주목받는 실력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후배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그녀는 대체로 민우가 알아서 사건을 처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자율성을 보장해 주면서도 오류가 보이면 어쩌다 생각난 것처럼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함께 일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것이 자신을 배려하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민우가 민망하지 않도록 스스로 수정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녀가 실력과 인품을 골고루 갖춘 선배라는 사실은 동기들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휴게시간에 모인 동기들은 쉬는 시간을 틈타 선생님 뒷담화를 일삼는 학생들처럼 선배들을 씹곤 했다.     

 

 “하아~~ 시×. 오늘 꼰대가 나한테 뭐랬는 줄 알아? 기본이 안 돼 있데. 기본이! 자기가 틀려놓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 있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확 들이받으려다가 학교 선배라 참았어.”     


 “어이쿠. 그 선배는 왜 매번 그런 식이래?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지. 나도 전에 그렇게 당한 적 있었어. 그 인간 생각하니 나도 열받네. 한잔 사줄까? 콜?”     


 “우리의 사회적 위치는 법원, 검찰, 의뢰인, 상사, 선배 그리고……. 을(乙)이 아니라 기(己)? 아니면 경(庚)이라도 되면 다행일 지경이야.”     


 “화나도 어쩌겠어? 이 바닥이 좁은 거 잘 알잖아. 받아친다고 별 수 있겠어? 바로 온 동네방네 소문 다 나고 옮길만한 법인 찾기도 힘들걸. 참길 잘했어.”     


 “아냐.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지. 참고 있으니까 계속 그 지 × 이잖아.”


 주로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 억울한데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해 부아가 치미는 것이다. 생각 없이 던진 선배들의 말은 돌이 되어 개구리를 때린다.      


 그렇게 맞아 한 맺힌 개구리들이 한데 모여 개굴거린다.


 육두문자도 살며시, 가끔은 노골적으로 섞어 쓰면서…

 

 자존심 상한 개구리. 무안한 개구리. 분을 삭이지 못해 서럽게 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동기들은 민우를 몹시 부러워했다.      


 “사수가 능력 있어, 성격 좋아, 여섯 시면 땡 하고 퇴근도 하니 눈치 안 보고 칼퇴도 가능해”하며 민우를 전생에 나라를 구한 놈 정도로 취급했다. 민우도 그런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은 있었지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그녀가 좀 이상해졌다.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맡았고 종종 자정까지 회사에 남아 있곤 했다. 급기야 법인 이름으로 나가는 모든 서류를 검토했다.      


 그럴만한 까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직원의 실수로 법인이 소송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시니어 이상 긴급회의에 들어갔고 갖은 노력으로 사건을 무마할 수 있었다.      


 이후 사건 전반에 대해 좀 더 엄격하게 검토하라는 방침이 떨어졌다. 기간 도과 여부와 당사자선정에 대해서 각별히 주의하라는 지시도 시달됐다.     


 방침이 없더라도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안이었다. 그리하여 다들 한바탕 소동으로 지나갈 일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법인의 모든 사건에 대해 그녀가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그녀는 일일이 손수 챙기면서 자신을 혹사시켰다.      


 그녀의 행태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 속에 파묻히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사수가 저러니 민우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녀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한 주를 보냈다.


 그렇게 일 년이 되어가자 그녀는 자신보다 족히 열 살은 더 나이 든 사람 같았다. 처음 봤을 땐 네 살 연상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이었는데, 부쩍 수척해진 모습에 언젠가부터 그녀가 짠하게 느껴졌다.     


 혹시나 아무도 없을 때 큰일이라도 날까 봐 걱정되었다.


 주말에 홀로 근무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보도가 왕왕 떠도는 시기라 더욱 신경 쓰였다. 그래서 자신도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곤 했다.  

   

 이번 휴정기에도 그 때문에 계속 사무실에 나왔다.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이라 한여름을 보내기에 나쁘지 않았고 그동안 시간이 없어 소홀했던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     


 예상대로 그녀도 매일같이 사무실에 나왔다. 그런데 주말 밤부터 그녀가 보이지 않더니 한 주간 내리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일만 해서 걱정했는데 안 나오니 또 걱정이네. 이번엔 진짜 휴가라도 가셨나?     


 이래도 걱정 저래도 근심인 민우는 월요일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월요일.      


 안색이라도 살필까 해서 은영의 사무실로 갔다. 그냥 들어가기엔 쑥스러워 미리 상담 예약 시간과 상담자의 도착 여부를 확인했다. 찾아갈 빌미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 주를 못 봤다고 벌써부터 어색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은영은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아니. 좋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뭔가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      


 생기를 뿜어내며 열심히 법전을 탐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나만 걱정한 건가.      


 ***     


 지아, 정민우 변호사 그리고 이명섭 씨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명섭 씨는 들어올 때부터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변호사님예~~ 너무 억울해서 이대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네 말씀해 보세요.”     


 지아가 말했다.      


 “즈이 아부지가 말이에요. 건강검진받다가 암을 발견했어요. 근데 위암 말기라는 거예요. 병원에서 카플, 뭐라더라, 카플, 거, 있잖아요.”


 “카플란 마이어 말씀이세요?”     


 지아가 물었다.      


 “네. 맞아요. 그거 해 가지고 일 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요. 그게 그게 말이죠.”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명섭 씨가 말을 더듬었다.     


 “남은 생존 기간이 짧다는 말씀이지요?”


 “네네”     


 지아의 질문에 사십 대의 남자가 금방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건가요?”     


 “그게 아버지가 처음 항암 치료를 받을 땐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새로운 화학요법 치료제를 알게 된 거예요. 근데 그게 다른 치료에 비해 엄청 비쌌어요. 저는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했고 다른 가족들은 뭐 하러 그렇게 큰돈 들이냐고 반대했지요.”     


 “그래서 치료를 못 하신 건가요?”     


 “아니에요. 사실 아부지 재산이 꽤 많거든요. 치료비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에요. 제가 아부지 모시고 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해 드렸어요. 그리고 CT 촬영을 했는데 종양이 조금 줄어들었어요. 아부지 몸에 잘 맞았나 봐요. 저는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아부지를 모시고 다녔고 병원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어요. 의사 말로는 예후가 좋을 거라 더군요. 그래서 저랑 아부지는 무척 기뻐했어요.”     


 “완치되신 건가요?”     


 “아니요.  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치료에 문제가 있었나요?”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엄마랑 형이 치료비가 비싸다고 말려서 치료를 중단했어요.”   

  

 “네?”     


 지아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온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목소리가 너무 높았는지 민우가 끼어들었다.      


 “그럼 어떤 소송을 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그걸 모르니까 여길 찾아온 게 아니겠어요?”


 민우의 질문에 신경이 거슬렸는지 명섭 씨가 확 짜증을 낸다. 새끼 변호사가 어딜 끼어드냐는 투였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어머니와 형을 상대로 소송하고 싶다는 말씀인가요?”     


 지아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김변호사님은 말이 통하네요.”     


 명섭 씨의 안색이 다시 밝아졌다.      


 “엄마와 형을 상대로 돈을 받아내고 싶어요. 그것도 많이요.”     


***     


 의뢰인이 돌아가고 지아는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상담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했다. 법전을 좀 읽었다고 해서 명섭 씨의 말이 절로 이해되고 모르던 단어들이 줄줄줄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다니.      


 자신이 생각해 봐도 변호사처럼 상담한 것 같았다. 그럭저럭 위기를 모면했다.      


 뿌듯함도 잠시, 하~~~ 한숨이 쉬어졌다.      


 은영의 머리가 이 사건은 수임하기엔 곤란하다며 경고음을 보내왔다.      


 이 사건엔 여러 가지 난제가 있었다.      


 명섭 씨의 마음엔 가족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밑바탕엔 상속재산에 대한 다툼이라는 화두가 깔려있었다.      


 그러나 마땅히 소송을 제기할 근거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이미 이 년을 훌쩍 넘겼고 상속재산도 협의로 나누어 가진 상태였다.      


 어쩌자고 저렇게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을까. 하아~! 지아가 한번 더 한숨을 쉬었다.


 그때 사내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 상단 화면에 ‘대표실’이라는 단어가 떴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휴가 잘 보내셨습니까.”     

 지아가 수화기를 들고 상냥하게 인사부터했다.


 -네. 김 변호사는 잘 쉬었어요?     

 묵직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네.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좀 전에 만난 명섭 씨 말인데요. 사건 어때요?     


 “아~~ 사건화하기는 좀…….”     


 지아가 말을 흐리자 대표가 의아한 듯 물었다.      


 -뭐 곤란한 점이 있어요?     


 “네. 명섭 씨는 자신이 아버지를 돌본 사정에 대해서 보상받고 싶어 하는데요, 상속재산은 이미 협의로 분할된 상태라 기여분 청구나 유류분 보전도 법리상 불가능합니다. 형에게 지나치게 많은 재산이 분배되긴 했지만 분할 협의의 하자를 다툴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에이. 김변~~ 갑자기 왜 이래요. 아마추어같이… 내가 잘 아는 업체 사장이니까 어떻게 좀 해봐요.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전화했어요. 뭐든지 생각해서 일단 소송을 내봐요.     


 “네. 알겠습니다.”     


 어느 업계나 무리한 걸 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변호사가 되어도 그렇구나.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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