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에
가을 들판이 색색으로 변해갑니다. 올해는 9월부터 비가 더 오면서 들녘으로 나서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뿌린 씨앗의 수확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들녘은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 같으면서도 인위적인 힘에 의해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획 아닌 구획으로 나눠진 들판은 높낮이도 다르고 크기도 다릅니다. 색이 대비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계절의 변화를 마주합니다.
주변의 산은 높이와 색깔, 계곡으로 인해 그 구분이 더욱 뚜렷해지며 들판을 감쌉니다. 멀리서 보면 이런 풍경은 아주 자연스럽고 예쁘게 디자인된 캔버스 같습니다. 봄과 여름에 씨앗을 뿌리고 기른 주인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주인의 성격에 따라 그 색도 달라지고 그 경계도 크고 작고 다양한 모양으로 자리합니다.
어느 곳은 노란색으로 변하고 어느 곳은 짙은 녹색으로 변하며 또 다른곳은 붉은빛을 띠기도 합니다. 하얗고 노란 꽃이 피기도 하고 꽃은 지고 씨앗이 맺혀있기도 합니다. 수확이 끝난 어느 공간은 앙상한 줄기만 남은 채 썩어가기도 합니다. 넓은 공간을 차지한 부류도 있고 아주 작은 공간을 여러 개로 나누어 알록달록한 원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도 있습니다. 가을에 보는 들녘의 풍경입니다.
저 모습 속에는 주인의 얼굴이 있습니다. 밝은 눈도 있고 향기를 품은 코도 있고 바람에 소리를 싣고 온 귀도 있습니다. 그것은 밝고 환한 웃음으로 찡그린 얼굴로 나타납니다. 바라보는 자연은 같은 모습이지만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을 바라보듯이 땅을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도 각양각색입니다. 그 마음의 색이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들판입니다. 누구는 노란색을 좋아하고 누구는 분홍색을 좋아합니다. 누구는 네모진 땅을 좋아하고 누구는 자연을 닮은 굽이진 땅을 더 좋아합니다.
사람은 자연 속에 살지만 자연은 알지 못하고 그곳의 아주 작은 하나만을 취하며 생을 이어갑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저 들판은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고개를 들어 먼 곳에서 보아야 다양한 선과 색이 보입니다. 저 들판은 오늘도 주인의 마음을 닮아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그 속에서 작은 빛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내가 본 저 들판이 내일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