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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Dec 25. 2023

금강산의 봄, 리화식(북한) 작가

       

금강산의 봄, 리화식(북한)


올겨울 유난한 추위가 찾아왔다. 눈도 내렸다. 몸은 움츠러들고 마음은 걱정이 앞서야 하는데 조금 반가움도 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추위이자 눈이기 때문이다. 풍경을 보자 그림이 생각난다. 겨울의 끝자락 봄 시작의 풍경이다. 지금쯤 금강산에는 얼마나 눈이 왔을까. 옛 정취처럼 눈 속을 거니는 동자승과 노승의 모습이 보일까. 설악의 깊은 골짜기는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풍경만 그리고 있을까. 설악산 눈 내린 봉우리를 보면서 금강산을 그려본다.


금강산에 봄이 왔다. 꽁꽁 얼었던 산맥이 기지개를 켠다. 흰 눈 내리고 녹을 줄 모르던 깊은 계곡에 봄이 왔다. 지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두꺼운 겨울 이불을 걷어내고 있다. 아직도 산 정상에는 눈이 쌓여있다. 겨울의 상징이다. 그렇지만 땅기운 머문 깊은 곳에서부터 봄이 오고 있다.


흐르는 물소리에 새들이 날아오르며 깊은 계곡의 움트는 소리에 반응한다. 깊은 겨울이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일만 이천 봉의 봉우리에 흰 눈이 걷히고 파란 봄을 알리는 새싹들이 움튼다. 한겨울 동안 인간의 발걸음을 막은 체 깊은 동면의 세월 보낸 깊고 깊은 계곡이 열린 것이다. 겨우내 바위와 나무를 감싸 안았던 눈들이 녹아내린 물줄기는 굵고 힘찬 폭포를 이루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린다.


아직 한구석에 남아있는 얼음마저 눈 녹은 물로 씻어내고, 계곡의 울림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새들이 힘찬 날갯짓을 펼친다. 저 3단으로 꺾이고 꺾이어 내리는 폭포는 아마도 이맘때에만 생겨나는 눈 녹인 물이 만들어내는 봄의 폭포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힘차게 흘러내릴 일도 깊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숲을 깨우지는 않을 것이다.


시리도록 아려 보이는 저 폭포의 줄기를 보니 가뭄으로 식수마저 끊겨버린 우리 산맥의 깊은 계곡이 생각난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깊고 깊은 산과 계곡마저 모두 파헤쳐 도시로 보냈건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먹을 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금강산은 오랫동안 그 모습 그대로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목마르면 네게로 달려갈 수 있도록. 어딘가 한 곳은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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