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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Nov 10. 2022

명화 속 아이, 편안함과 두려움

보이는 것과 내면의 표현

아이를 주제로 한 세 작품을 보면서

평안함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01.

1893년, 캔버스에 오일, The Child's Bath, Mary Cassatt


아이는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썼을 것입니다. 이제는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아이를 씻기기 위해 따뜻한 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일은 매일 반복되지만 성스런 의식 같은 진중함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안아 무릎에 앉히고 얼굴과 손발을 씻기고 발을 씻길 차례입니다.


아이는 물이 뜨겁지는 않을까 살며시 발을 담가봅니다.

아이의 표정이 편안합니다. 아이를 감싸 않은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아이의 허리를 적당히 감싸 안은 손, 한쪽 발을 잡고 가만히 물속에 넣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아이는 안심합니다.


아이와 어머니(하인)는 이미 신뢰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왼쪽 손으로는 무릎을 짚고 발이 담긴 물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에서 평안함을 느낍니다. 이 순간을 즐기는 아이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여성의 줄무늬 옷과 물을 담은 그릇의 색 조화가 정말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체 작품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02.

1890-91, Color drypoint, aquatint and softground etching from two plates, The Bath, Mary Cassatt




욕조에 손을 담근 엄마의 표정이 진지 합니다. 머리카락이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갓난아기는 엄마의 한쪽 팔에 매달려 있습니다.


물 온도가 적정하면 이제 물속으로 들어갈 순간입니다. 아이는 울까요. 아니면 좋아서 첨벙 대며 놀자고 할까요. 파란색 욕조와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엄마의 색 대비를 통해 대상을 확실히 부각해주고 있습니다.


위쪽 작품 유화가 주는 이미지와는 다른 아주 가벼운 느낌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두 작품도 아이에 대한 정성과 사랑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03.

1893년, The Girl by the Window, Edvard Munch


이 작품은 뭉크 '창가의 소녀'입니다.

한밤중에 어린 소녀가 잠옷을 입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불빛에 반사된 창문의 형상이 바닥을 비추는 것으로 보아 방은 어둡고 밖은 환한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는 맨발로 커튼 뒤에 숨어서 밖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잠결에 깨어났던가 아니면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깥의 표정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아이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밖을 나가고자 해도 나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어린아이에게 밤은 무서운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방안에 음침한 가구가 있는 정도의 표현, 그리고 아이의 표정 없이 하얀 옷에 응시하는 모습 자체가 암울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는 무엇을 보기 위해 열려있는 커튼을 살짝 제치고 숨어서 바라보는 것일까. 부모가 자기만 남겨놓고 먼길을 떠나는 것일까요. 혹시나 자기를 버리지 않을까 두려움 가득한 시간이 아닐까요. 작가는 소녀의 시선을 통해 궁금증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작품은 주는 의미의 해석을 역에 두었겠지요.



04.

1894년, Drypoint, The Girl at the Window, Edvard Munch


위쪽 작품을 보다 보니까 작가의 같은 구도 작품이 한점 더 있네요. 방안의 배경 없이 아이와 창만 나타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소녀의 표정이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없애고 단순하게 표현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유화작품 이후에 판화로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인물의 위치가 왼쪽으로 옮겨졌을까요.





세 작품을 보면서 아이의 걱정 없는 평안함과 두려운 시선으로 밤의 풍경을 바라보는 소녀의 작품이 대비되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평온함이란 그 순간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아이가 영원히 평안한 삶을 추구하길 바라지만 항상 어느 순간 어느 위험 속 위험에 다다를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여유로운 아이의 표정 속에 걱정 썩인 두려움이 오버랩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녀의 모습이 더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오랫동안 각인된 뭉크의 절규(1893년 작)가 가져온 연쇄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작품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전반적으로 어두운 화면 속에서 창문 쪽 대부분은 밝은 색을 썼다는 것입니다. 두꺼운 커튼이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과 관계없이 밝게 표현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쩌면 소녀에게 저 밖에 바라보는 대상을 통해 희망이 있다는 암시를 두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소녀는 그 희망의 사다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림을 통해 꾸며내듯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작가의 작품 의도와 다르게 나만의 상상이라는 것 또한 작품 속 주제에 포함되는 것이니까요. 오늘은 아이를 주제로 한 작품을 보면서 신비감과 함께 밤의 두려움을 보고 해맑은 아이의 표정 속에서 행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 자료 : 시카고미술관 컬렉션 사진 및 설명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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