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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Jan 15. 2023

명화 속 오늘의 요리 재료

 사실적 묘사란

오늘 당신의 식탁 위 메뉴는 무엇인가요.

혹시 닭요리 아닌가요.

아니면 안심 스테이크 같은 것인가요.


냉장고 속에 들어있을 재료가 어쩌면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재료일 수도 있겠지요.

통닭을 맛있게 먹었지만, 저렇게 떨이 뽑힌 채로 매달려있는 닭을 보고서도 먹고 싶을까요.

아니면 소머리국밥집에서 맛있게 요리를 먹었는데 식육점에서 저런 모습을 본다면 먹을 수 있을까요.


그냥 단순히 식사라는 차원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잔혹이라는 말이 붙는다면 그것은 요리가 아니라 다른 생명에 대한 존귀성을 이야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작품 속의 저 정물을 작가는 왜 그대로 보여주려 했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그림1.

1888년, For Sunday’s Dinner, William Michael Harnett

일요일의 식사입니다.

오늘 재료로 닭이 선택되었습니다.

금방 잡은 닭은 털만 대충 뜯어내고 찬장 문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닭은 살이 거의 없이 말라있는 것으로 보아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았는가 봅니다. 농장 주위에 풀어놓고 기르다가 오늘 잡은 것이겠지요. 그래도 우리 가족의 오늘 한 끼 식사를 책임질 재료이지요.


찬장은 낡아 고리의 못이 빠져 있어 궁핍한 삶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여기저기 못이 박혀있고 못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다양한 것을 걸어 놓는 공간인가 봅니다.


그런데 너무나 사실적으로 선명히 묘사된 장면에 눈길이 갑니다. 배경뿐 아니라 닭도 세밀하게 표현했습니다. 닭살이 돋는다는 말처럼  털을 뽑은 자리에 깃털까지 선명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조금 거북할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식탁 풍경을 통해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닭을 가지고 어떤 요리를 만들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닭볶음탕일까. 구이일까. 찜일까. 뭐 그 지역의 독창적인 요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림2.

1882년, Calf’s Head and Ox Tongue, Gustave Caillebotte


쇠고리에 송아지 머리와 소 혀가 걸려있습니다. 피가 흐르지는 않는 것을 보니 잘 손질된 재료인 것 같습니다. 사실적이기보다는 조금 부드럽게 표현하여 징그럽다는 거부감이 줄어들었습니다. 더욱이 매달려 있는 소머리가 이렇게 부드럽게 보일까요.


아래쪽에 고리가 잔뜩 있는 것으로 보아 가정집이 아닌 식육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잘 정리된 고기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랄까요. 작가는 보기에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 식육점 풍경을 부드러운 색감을 통해 하나의 정물로 묘사하였습니다. 관객과 대면에서 부담감을 줄여준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정물화만큼 인기를 끌기는 어려울듯하네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자신이 먹는 요리의 식재료를 적나라하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모습을 거의 보지 않았고 요리만 먹어본 상류층에게는 거북스러운 정물화가 될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작품을 통해 우리의 식탁을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야채로 가득한 식탁도 한번 보면 좋겠네요. 신선한 채소를 활용한 식탁 건강해 보이지 않을까요.  




그림3.

Cow’s Skull with Calico Roses, 1931, Georgia O’Keeffe

그럼 이 작품은 어떤가요. 소의 두개골입니다. 이미 석화되어가는 동물의 뼈인데 작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요.

 

Georgia O'Keeffe는 신비한 그림을 많이 그린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의 뼈는 1930년 여름 뉴멕시코에서 수집한 소 두개골이라로 하네요.


두개골과 장미꽃이 있습니다. 그것도 하얀 장미입니다. 작품의 제목으로 보면 옥양목玉洋木으로 만든 조화입니다. 옥양목 장미는 뉴멕시코에서 무덤을 장식하는 데 사용된다고 하네요. 뼈가 아름다워서일까 아니면 죽음의 숭고함에 대한 경건함일까. 궁금해집니다.

시카고 미술관 작품 설명을 보면 "사막에서 많은 동물의 뼈를 발견했고, 그녀는 뼈에 매료되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일부를 뉴욕으로 배송했다고 한다."


관객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 작품은 죽음과 삶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더 깊게 합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위쪽의 두 그림도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사막에서 목 말라죽은 동물의 뼈든 인간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식탁에 오를 고기든 그 생명체의 고귀함, 신성함은 아름답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삶과 죽음조차 예술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들일수 있는 작가의 시각은 많은 시간이 흐른 이후에도 깊은 생각을 지니게 만듭니다.



* 시카고미술관 컬렉션 사진 및 설명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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