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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Nov 06. 2022

명화로 보는 가족 식사 모습

소통과 배움의 공간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은 어딘가 따뜻해 보이지요. 동화 속같이 오손도손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없는 집은 없는 대로 사는 집은 그 나름대로 식사는 꿀맛같이 즐거운 시간입니다. 한 끼 식사 준비를 위해 애쓰던 어머니 모습부터 젓가락 싸움하듯 먹고 싶은 것을 먼저 먹으려던 아이들 모습까지 그것은 삶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집에서 한 끼 식사가 어려운 요즘은 외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요. 어디서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아래 두 작품은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여유 있는 식사를 하는 모습과 단출한 가족의 식사 장면입니다. 대비되는 듯한 모습이지만, 모두 다 추억 같은 일상이네요. 명화를 통해 옛사람들과 지금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01.

1875, Lunch at the Restaurant Fournaise, Pierre-Auguste Renoir


작품속 사람들은 날씨 좋은 날 강변의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점심을 하고 있습니다. 몇 잔의 술에 오른쪽의 남자는 얼굴이 불게 변했고 담배를 피우며 비스듬히 기대어 있습니다. 왼쪽의 남자는 여성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는 듯하네요. 아마도 창밖의 젊은 여인이 타고 있는 보트를 보면서 오늘 좋은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에는 여러 명이 탄 배가 지나가는 것으로 보아서 한창 보트를 즐기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세 사람은 보트를 즐긴 후 휴식 중이거나, 이제 보트 놀이를 즐기러 갈 시간을 기다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밝고 화사하게 표현된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삶에 대한 여유겠지요.


하루 종일 일해도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상류층 사람들의 모습일까요. 그 풍요로움을 바라보는 관객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들의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가 어느 누구에게는 하루의 값어치를 할 수도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아래쪽 그림(02.)은 가족의 식사 모습입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식탁을 비추고 있습니다. 두 아이를 위해 엄마는 빵을 자르고 있네요. 커다란 바케트 빵을 아이들이 먹기 좋게 자르고 있습니다. 큰 아이는 엄마가 빵을 자르는 사이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아이의 눈은 접시에 머물러 있네요. 배가 많이 고픈가 봅니다. 오른쪽 꼬마 아가씨의 접시가 빈 것으로 보아 빵 이외에는 먹을 것이 없을 같은 식탁입니다. 하다못해 물병이나 우유병 조차도 놓여있지 않네요.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하다가 잠시 들어와서 아이들 식사를 챙기는 모양입니다. 아빠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겠지요. 이들의 궁핍한 삶은 벽과 창문에 커튼 역할을 하는 창 가리개에서도 보입니다. 하루를 벌어 한 끼 식사를 빵으로 해결해야 하는 살림이지만 두 아이는 엄마가 주는 빵 한 조각에도 기다려주는 익숙함이 느껴집니다. 이들의 곤궁한 삶은 언제쯤 풀어질까요. 가족이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아이들이 자랐을 때는 사라질까요. 갈라지고 파인 방바닥만큼이나 험난함이 느껴집니다.


02.

1890, A Family Meal, Evert Pieters




03.


1625년경, Still Life, Pieter Claesz


레스토랑에서의 여유로운 식사와 한 끼를 빵으로 해결하는 가족의 식사 장면은 우리의 주변에서도 쉽게 대비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그런 모습을 비판만 할 수는 없지요. 자유와 경제라는 단어가 더 무겁게 다가오니까요. 이런 삶에 대한 비교와 허례허식, 탐욕을 바라보며 그림으로 드러낸 것이 바로 정물화의 일부들이지요.


위쪽 그림은 화려한 테이블과 풍성한 식탁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한 끼 식사일 수도 있고 어느 곳의 파티를 위한 준비 일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여기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탐욕, 세속적인 부패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값비싼 식탁과 장식물, 고급 재료로 만든 음식은 탐욕과 과시의 상징이지요.


어쩌면 노동자와 지배층의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감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같이 가 아닌 혼자만의 것이지요. 누가 굶던지 내 배가 가득 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아야 하고 더 많아야 하는 탐욕은 인간이기에 가진 특권 같은 것이지요. 예술은 결코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더럽고 흉폭한 모습까지도 담아내는 질그릇 같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식사를 하고 있을까요. 생각 없이 맛집을 찾아 떠다니는 즐거움이라고 만 할 수 있을까요. 고통을 겪지 않은 인간은 이해하고 생각할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는 것입니다.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이 고통이 되는 아픔은 없어야겠지요. 오늘도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 자료 : 시카고 미술관 컬렉션 사진 및 설명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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