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설렘의 계절이다.
바람이 분다. 낙엽이 흩날린다.
가을꽃에는 마지막 꿀을 찾는 벌들이 날고, 갈대는 바람 따라 솜방망이 같은 황금색 잎을 바람에 흔든다.
여름 내내 가려졌던 나무 위 새들의 둥지가 드러나고 빈 둥지엔 햇살이 가득하다. 어제 떠난 새는 없지만, 그가 남긴 흔적으로 올해도 한 가족 늘어난 새들의 평안을 기원해본다.
가을이 반가운 것은 하늘이 높고 푸르기 때문이다.
푸른 바다보다 더 푸른 하늘은 새 한 마리가 지나가도 흔적이 남을 듯 푸르다.
저 푸른 하늘이 주는 기쁨은 무엇일까. 환해진 마음으로 주변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마술이다.
잊혔던 어느 순간이 그리워지게 하는 파란 하늘은 가끔 그 흔적을 남겨두고 사라지기도 한다.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가을은 또 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때문이다.
뒷동산 떡갈나무 숲을 지나 소나무 숲과 낙엽송 숲을 지나면서 그 소리는 시원한 폭포를 연상하게 한다.
파란 하늘로부터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바람소리. 그것은 가을이다.
열매를 떨군 호두나무의 삭정이 가지가 떨어지며 내는 소리보다, 뒷산의 활엽수 잎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주목나무를 지나며 내는 소리는 심장을 뛰게 한다.
자연 앞에 서 있음을 감사하게 하는 가을이다. 푸른 하늘 아래 울긋불긋 단풍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조화에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먹이를 물고 잠시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작은 새가 더 통통하게 보이는 것도 가을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것 하나도 아끼고 나누는 마음이 이는 것도 가을이기 때문이다. 썩은 밤 한 개도 나누려 하는 이웃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모든 것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가을 덕분이다.
오늘 만끽한 이 가을이 내년에도 있을까? 오늘 즐기고 또 마음에 담으며 가을을 즐기는 여유가 중요하다. 내년의 가을은 또 다른 이들이 즐기도록 오늘 내가 행복해한 순간을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가을이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다시 태어나는 준비를 마치는 그것이 가을이다. 오늘 내려놓음으로써 다음엔 더 큰 기쁨을 얻는 것, 그것은 가을이기에 가능하다. 봄, 여름, 겨울은 할 수 없는 것을 가을이기에 한다. 그리고 다시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오늘 저 푸른 하늘의 창백한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걱정할 것 없다. 이미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걸을 준비만 하면 된다. 저 바람을 따라 걷는 순례자가 되어 보자. 우거진 숲을 보고, 깊은 계곡을 걷는 그런 낭만이라는 이름과 먼 산 바라보며 잠시 푸른 하늘에 자신을 맡기는 그런 시간 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가을은 마음 설레는 계절이다. 그 설렘으로 오늘도 행복해진다.
* 2020년 11월 8일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가을이 더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