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만들고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전쟁과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무수히 사라진 것을 기록으로도 알고 있다. 또한 예술가가 작고 후 작품 탄생의 배경이 된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다시 조명되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경우는 정말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다. 작가가 작업을 하던 곳은 작가의 인생이 담긴 곳이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작품은 이야기를 먹고 자란다. 작가의 삶과 배경, 그리고 지역의 문화가 어울려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요즘 유명 연예인들이 다녀간 곳이 성지처럼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자취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예술도시들은 예술가의 삶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 발자취를 쫓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아카이브가 중요한 것이다.
춘천을 대표하는 예술가의 한 사람인 권진규 조작가에 대한 아쉬움도 이러하다. 지역에 연고를 가지고 있고 그런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결국 서울에서 그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지역 신문 기사에는 "지난해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맞았으나 그의 예술혼이 남아있는 춘천지역에서는 이렇다 할 기념사업이나 전시 행사 등이 진행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서울시립미술관은 ‘22.3∼5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을 52일간 선보인 가운데 총 7만 1970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되는 등 호응을 얻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아쉬운 부분이다.
춘천에서 작가가 창작 활동을 했다는 건물이 아직 도심의 중심에 남아 있다. 건물은 재개발지역이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고, 지역에는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작품 한점 남아 있지 않다. 하기야 지역에 미술관조차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에 남도록 만드는 역할조차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렇더라도 행정과 미술인들이라도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역에 남아 있도록 역할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근래 또 다른 작가의 유작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30여 년 이상을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지만 지역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김차섭, 김명희 작가 이야기다. ‘23.8.19일 춘천의 한 호텔에서 ‘김차섭 화백 1주기 추모와 기념사업회 출범식’이 있었다. 각계에서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분들 200여 명이 함께 자리했다. 두 분은 30여 년 전에 춘천 신북읍 내평리의 수몰지역 초등학교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뉴욕을 오가며 작업을 하셨다. 그렇게 열정적인 김차섭 작가가 2022년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건물과 작품 관리에 대한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김차섭 작가의 생전에는 이곳에 미술관을 지어 자신의 작품을 계속 전시하고자 하는 열정을 지니고 계셨었다.
두 분은 뉴욕에서 백남준 선생과도 교류를 가졌던 한국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미술계에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독특한 작업세계가 지닌 의미는 향후 미술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작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평생 창작했던 작품을 미술관을 만들어 보여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에서 나서서 이분들의 작품이 지역에 남겨지고 더 알차게 대중에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은 김명희 선생 혼자 작업을 하시고 있다. 주변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 김차섭화백 기념사업회가 구성되어 있어 작가의 작품과 생전의지를 실천할 운영계획을 체계적으로 가지고 갈듯하다. 현재의 건물을 잘 정비해 생전에 구상하던 미술관을 만들고 작가의 의지와 어울리는 교육사업 등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구상자체는 명확하고 좋다. 그러나 실행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그런 경우 과연 내평리 공간이 제대로 정리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대안에 대한 준비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설을 공공의 영역으로 받아들여 정비를 하는 방법도 장기적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춘천에 미술관이 없으니 건물과 작품의 기증을 받아 시에서 운영하는 방안이다. 유족이 합의한다면 이 방법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에서 관리 운영하면서 전시와 작가 프로그램 등 작가를 기리는 사업과 예술교육 등 예술공간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시립미술관이 지어진다면 분관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공간은 건물뿐 아니라 주변 토지까지 꽤 넓은 면적을 보유하고 있어 증축이나 주변 자연과 연계한 공간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유족과 행정, 지역 예술인들이 같이 참여해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먼저 작가 아카이브 작업을 통한 작가 재조명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민들이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은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의 관심이 우선되어야만 가능하다.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만 본다면 불가능하다. 우리가 사는데 필요한 문화의 양식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문제에 모두 함께 고민할 때 가능할 것이다. 또다시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지역에 계신 작가 분들의 아카이브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어찌 보면 미술관이 없는 현재 상태에서는 문화재단에 별도의 팀을 만들어 미술관 준비와 작가 아카이브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마지막까지 창작활동을 하던 곳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지역사회의 역할이다. 그 결과의 열매는 지역사회가 얻는 것이다.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로 힘을 보태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