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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Mar 10. 2024

김재신 작가 통영 바다 이야기(2)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넓은 공간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짧은 수평선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되기도 하다. 바다를 끼고 살아온 사람의 삶에는 바다가 고향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여행지의 하나일 수 있다. 삶과 시선이 달라진다. 책을 통해 배운 바다는 고래가 살고 아름다운 수초가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는 삶의 의지와 처절한 공간을 보기도 한다. 해일이나 태풍이 오면 바다는 평화로운 공간이 아닌 죽음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 관점이다.


지구본을 돌려보면 커다란 대륙의 무거운 이미지와 다르게 파란색으로 표현된 바다색이 아름다운 미지같이 느껴진다. 남북이 갈리면서 섬 아닌 섬나라가 되어 버린 우리의 시선에서는 바다는 나가고 들어서는 앞마당이다. 그런 바다를 표현하는 것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된다. 현실의 바다가 아닌 작가의 이념을 거쳐 새로운 바다로 태어난다. 그때의 바다는 현실의 바다보다 더 진정성을 갖는 바다가 된다. 예술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글과 그림이 있다. 그 작품은 상상과 현실을 바라본 작가의 이념이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표현해 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예술이다. 우리는 그 작품을 통해 바다를 보면서 그 속의 이야기를 찾게 된다. 역사를 보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만나고 어린 시절의 내 추억을 찾아내며 바다의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작가들이 바다를 표현하고 있지만 바다의 내음마저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을 자극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잊힌 감각을 들쑤셔내는 색의 조합은 빛이다. 그것은 바다가 지닌 속성을 찾아내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로 김재신작가가 조탁기법이라 이름 지은 방법으로 작업한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바다도 있고 마을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 빛도 담겨있다.


작가는 통영에서 작업한다. 한때 자개로 유명한 지역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흔적만 남아있다. 몇 년 전 통영을 방문했을 때 전통자개 공방에서 찻잔을 구입한 적 있다. 옻칠 내음과 빛이 그리워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부친은 자개 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 무늬를 자주 접했고 결국 지금의 작업을 이어 가는 실타래 같은 역할이 어렸을 때의 추억이자 경험이었다. 그의 색은 자개의 빛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 제작 방법은 여러 겹의 물감을 칠한 뒤 조각도로 파내어 그 밑색을 드러 내는 방법이다. 그 깊이와 색을 통해 표현한다. 자개가 지닌 그 영롱한 빛을 통해 작품의 대상인 바다와 집, 마을을 표현한다. 그것을 작가는 조탁기법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여러 겹의 물감을 쌓고 파내어 작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의 깊이와 면적을 통해 색을 만든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빛의 재현을 통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통영바다의 이미지를 실현해 내고 있다. 그 색이 바로 자개가 지니고 있는 색상이다.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빛을 쫓아 작업하던 모네의 정원이 떠오른다. 바로 자연의 빛과 색채에 의한 색의 향연을 만드는 작가라는데 있을 것이다. 모네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색을 찾아 작업했듯이 김제신 작가는 바다에서 색을 찾고 있다. 매 순간 변화하는 바다의 빛은 찰나의 순간이다. 그 색을 잡아두는 노력은 바로 작가가 추구하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 빛이 있기에 그의 작품 속에 이야기는 살아있는 것이다. 평면에 색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숨겨놓은 층을 깎아내어 색의 층과 깊이를 통해 빛의 채색을 찾아간다. 그의 노력은 빛의 굴절과 시간뿐 아니라 작은 빛에서도 그 원형을 만나게 만드는 기법의 전환에 기인한다. 아마 모네와 작가가 같은 시기에 만났다면 빛을 표현하는데 서로 닮은 점을 비교하지 않았을까.


작품 속 주제가 만들어 내는 '동피랑이야기, 바다 등과 작품에 나타나는 고양이 한 마리는 작가이자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된다. 그 속에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이 존재한다. 그 희미해져 가는 추억 속에 과거의 통영을 떠 올리며 통영의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주제는 바다의 빛을 표현해 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적 사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제는 바다의 빛, 바다의 색인 윤슬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작가가 만든 조탁기법에 의해 완전히 드러난다. 그 기법은 색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기술적 수단이다. 수많은 색을 썩어서 단면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깊이와 배색을 조탁이라는 기법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그 기법을 통해 통영이라는 공간을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의 모습까지 담아낸다. 변해가는 사라져 가는 모습의 아쉬움과 기대가 담갸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어려서부터 듣고 보아온 삶의 이야기가 문학 소설처럼 쓰인다.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자신의 이야기, 가족, 통영사람들의 이야기가 예술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표현해 내는 마을이나 고양이, 바다를 넘어 통영의 역사와 통영 사람들의 삶이 들어가 있다. 무의식의 세계에 담겨있는 작가의 삶의 문화가 예술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색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순간 공감으로 표명되는 것 또한  그의 삶이 작품에 묻어있고 그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영이라는 새로운 바다 세계에 대한 동경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바다는 산을 가까이 한 사람에게는 산의 모습처럼 다가오고 광활한 평야를 그리워하는 이에게는 드넓은 지평선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작은 섬이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해일같이 보이기도 하고 바다의 흐름은 하늘의 구름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바다에서 윤슬을 볼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아니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통영이라는 곳은 아침에도 한낮에도 그 윤슬의 느낌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잔잔한 바다 위의 풍경에 빠져 든다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멈출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윤이상의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되고 수많은 예술가의 탄생지가  통영인 까닭도 바로 인간의 시각을 자극하고 마음을 두드리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통영의 바다를 표현한다. 겹겹이 싸인 물감의 색을 찾아 깊이와 넓이가 변할 때마다 드러나는 색의 조화는 자연이 만들어낸 통영바다의 이미지다. 어쩌면 더 아름다운 느낌이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색의 조화를 나타내듯 작가의 작품에는 바다의 빛이 담겨있다. 그 빛을 통해 바다의 흐름이 드러난다. 거대한 파도 같이 잔잔한 물결같이 쉼 없는 소용돌이 같이 색의 변화에 다라 드러나는 바다의 모습은 그 다양한 빛의 환상곡만큼이나 경이롭다.


작가의 작품은 통영 바다가 만들었다. 결코 통영을 떠나서는 표현될 수 없는 통영에서만 가능한 작품이다. 그것을 작가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리고 예술로 표현해 내었다. 그 과정을 이루기까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들이 작품 속에 함께 드러남도 그래서 그럴 것이다. 화려한 색상일수록 그 아픔 또한 더없이 깊다. 보일 수 없는 것이기에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속 갈등의 표현은 결국 무거운 색이 아닌 더 밝고 화사한 것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고뇌는 책에서 표현한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복 껍데기 안쪽의 빛깔은 무척 화려하지만 굉장히 깊이가 있다. 그걸 놓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 작품의 색이 점점 밝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10쪽).“ 책을 보면서 작가를 알아가고 작품을 알아간다.


*20240307 작가의 '바다를 읽어주는 화가 김재신'을 읽고 나서


https://brunch.co.kr/@flowjeon/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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