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소

내 이웃을 소개합니다

by Soo

우리 동네에 이사를 온지도 벌써 4년 가까이 됐다.
지금 5살인 셋째가 태어나자마자 이사를 왔으니. 동네를 다니다 보면 스무 걸음에 한 명 정도는 아는 사람을 만난다. 애가 많으니 애 친구 엄마만 해도..

우리 동네에는 특히 아이들이 많다. 각 세대에 아이가 대부분 둘 이상은 있으며 셋 정도는 있어야 아, 애 좀 낳았네 라고 할 수 있겠다. (웃음) 우리 집처럼 넷도 있고 다섯도 종종 있는 그야말로 다산의 동네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아이가 그렇게 많은 것이 이 동네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게 내 특징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이도 엄마도 많은 가운데 가족보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은 것을 나누는 내 이웃들을 소개한다.

편의상 이니셜과 나이를 표기하며, 나의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시선임을 미리 알린다.


K / 41세

이 언니는 나만치 애가 많으며 늘 피곤해, 자고 싶어를 입버릇처럼 하면서 공부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이상한 언니다. 애도 많은데 집에 물고기도 있고 밀웜도 있고 도마뱀도 있고 나무도 겁나게 많다. 이 집에서 그 생명체들이 매우 잘 자라고 있다.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는데 듣고 있는 자기 눈에 눈물이 고여버리는 언니. ~엄마, ~맘 으로 서로를 불렀던 애미들의 단톡방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물어보고 서로 이름 불러주기 하자고 했던 언니다. 그 덕에 우리는 그 이후로 주욱 ~엄마 대신에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C / 36세

동네에서 보기 힘든 예쁜 얼굴과 핫바디를 소유하고 있는데 본인은 그걸 잘 자각하지 못한다.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떨 때는 또 믿을 수 없이 대담하고 엉뚱해서 예쁜 얼굴로 웃기는 애다. 정이 오지게 많고 아이들을 예뻐라한다. 감수성 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가끔 우울海에 잘 빠진다. 약간 답정너 스타일이라 자기가 알아서 잘 빠져나온다.

K / 40세

전직 셰프.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내고 남편을 만나 개과천선했다고 말하는 언니. 요리 솜씨도 솜씨지만 코스별로 메뉴를 준비하는 걸 보면 약간 직업병 있는 것 같다. 반찬이나 국 같은 거 유모차 밑에 슬그머니 놓고 가거나 고구마 쪄서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기를 잘하는 언니. 칭찬하는 거 굉장히 불편해하고 만난 지 4년 됐는데 아직도 존댓말 한다. 내가 남편이랑 싸우고 속상해서 울면 복화술로 욕한다. (내가 봤어) 가끔 내가 쳐져 보이면 조식 먹으러 오라고 해서 늦은 오후까지 사육한다. 오오티디 지적하다가 의상디자인 전공했다고 어느 날 갑자기 털어놓거나 사귀었던 남자들 한테 도라이 짓 많이 했다고 고백하기도 하는 까도 까도 모르겠는 양파녀. 지금은 세상 누구보다 현모양처다. 술 취하면 인사불성 되기 쉬움.

J / 36세

알쓸신잡 또는 젊줌마로 불린다. 아는 게 진짜 많고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다. 드라이브 시켜주는 언니 같은 동생. 밥도 많이 해준다. 그녀의 집에 가면 ㅡ 언니, 이거 더 먹을래요? 다른 거 또 줄까요? ㅡ 가 반복된다. 항상 집에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어서 뻑하면 처분한다. 걱정꺼리에 쿨하기 그지없는 답을 잘 던져주며 운전도 잘하고 결단력도 쩌는 편이라 걸 크러쉬가 살짝씩 터지곤 한다. 성당에 혼자 가서 번뇌를 떨치고 오는 것을 즐긴다.

P / 37세

모델 뺨 후려치는 멋진 몸매에 시크가 좔좔 흐르는 외모를 가졌다. 그녀가 한번 빼입고 선글라스로 완성해주면 이거슨 동네에 머물기엔 서운한 비주얼. 살림을 기깔나게 똑 부러지게 잘한다. 다혈질에 터프해 보이지만 속은 천상 여자. 에세이를 즐겨 읽고 심금을 울리는 구절은 꼭 사진 찍어 공유한다. 소싯적 음주가무를 즐겼던 공통점을 비밀스럽게 갠톡에서 나눈적이 있다.

S / 36세

할 줄 아는 게 얘처럼 많은 사람은 별로 못 봤다. 뿌염을 해야겠다고 하면 내가 해줄게요 하면서 염색을 해주고 여권사진을 찍어야겠다고 하면 뒤에 하얀 배경 만들고 해서 사진을 찍어준다. 세 딸의 백일상 세팅을 혼자 해내고 그 와중 수박을 무슨 중국의 수박공예 뺨치게 파논 것을 뿌듯하게 자랑하는 그녀. 한여름에도 선크림을 바르는 법이 없으며 사시사철 선머슴같이 하고 다니는데 가끔 학교 행사 있을 때 화장하고 나타나 심쿵하게 만든다.

K / 39세

나는 체력이 안 따라줘, 를 입에 달고 살면서 밤에 잠을 안 자고 뭘 사부작사부작한다. 금손의 대명사. 실컷 만들고 남 주기도 참 잘한다. 늘 나를 길에서 만나면 ㅡ언니가 뭘 줄게 없네~어쩌나~ ㅡ 이러면서 떡 같은 걸 꺼내서 주곤 한다. 내가 툭 던지는 말에 어떻게 얘는 이런 재밌는 말을 하냐며 세상 신기해하는 언니. (내가 뭐랬길래)

K / 38세

동네에서 보기 드문 동갑 친구다. 아들 둘을 키우지만 굉장히 차분한 편이다. 소리를 잘 안 지르고 언행이 고웁다. 그래서 넌 어떻게 그렇게 우아하게 아들을 키우냐고 물으면 소리 안 지르고 살짝 꼬집었다고 말하는 엉뚱한 친구. 실생활에 도움되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며 냉철한 판단이 빛난다. 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할인을 못 받거나 혜택을 못 받는 꼴을 못 본다. 누구보다 빠른 써치로 팁을 던져준다. 굉장히 곱고 예쁜 외모가 빛나는데 그런 칭찬을 들으면 살짝 두드러기가 나는 것처럼 도리질을 하곤 한다.

P / 43세

누구나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의 동안이다. 그녀의 동안 비결은 다름 아닌 방탄소년단. 다른 언니들이 절레절레할 정도로 이 언니와 나는 덕질 메이트다. 꽃 그리기와 방탄소년단 태형이 덕질하는 게 요즘 이 언니 힐링 방법인 듯하다. 몇 년 전 방탄소년단 보러 같이 공연 가고 공연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까지 한 5시간 정도를 방탄소년단 얘기만 했다. 그게 가능한 우리는 방탄 덕후들.

K / 39세

이 동네 이사온지 얼마 안 됐을 때 놀이터 벤치에 앉아 나는 갓난이 셋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영혼 없이 밀고 있었고 이 언니는 삼 남매를 놀이터에 풀어놓고 피곤해 세 글자를 얼굴에 써놓고 있었다. 엄청 까칠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웬걸. 맛있는 거 못 해주고 못 사줘서 안달이 난 언니다. 길에서 만나면 어깨동무를 하고 손을 부여잡으며 나더러 고생한다고 늘 격려해주는 언니.

K / 36세

생각해보면 나는 얘 맨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아기자기한 성격에 엄청나게 부지런한 스타일. 손재주가 좋고 만들기를 좋아한다. 요즘 그걸로 뭘 또 해보려는 것 같음. 언젠간 대박 터지겠지. 미리 잘할게.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자꾸나.




대략 이 정도로 이웃들의 소개를 마무리할 수 있겠다. 사실 이외에도 더 많은 이웃들이 있지만 그들을 조금 더 자세히 본 후에 2탄에서 또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바란다.


삼십대에 내가 받은 복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이웃들을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녀들, 저거 내 얘기다 백프로 알 듯.

keyword
이전 17화화상회의에 참여하려면 다음 링크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