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와 통화를 했다. 언제나처럼 엄마는 아이들과 사위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내가 어찌 지내는지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는지 도통 묻는 법이 없다.
친정집엔 별일이 없냐 물으니 아무 일도 없다며 너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는 웃픈 사족을 덧붙인다.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를 근처에 사시는 이모와 격일로 돌보는 엄마는 할머니가 완전히 아기가 되어버렸다며 소식을 전하면서도 짐짓 씩씩하게 말했다. 입으로는 할머니 보느라 아무것도 못하겠다 하면서도 마냥 힘든 내색을 하진 않았다.
작년 이맘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치매와 각종 지병으로 요양원에 함께 계셨고 그러다 외할아버지는 먼저 돌아가셨다. 그때 내 뱃속에는 넷째가 있었고 입덧 때문에 사람 꼴이 아니었지만 나는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끝까지 지켰다. 그것 외에는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돌아가시기 전날 찾아뵈었었는데 거짓말처럼 그 다음날 돌아가신 걸 보고 나를 보았으니 되었다 라고 말씀하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였다.
장례기간 동안 외할머니는 말간 얼굴로 나에게 아이들은 어디에 두고 왔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손주 사위랑 집에 있다고 몇 번이나 대답을 해도 자꾸 잊어버리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물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날 요양원에서 외할머니는 나와 있던 두 시간 동안은 정신이 온전한 편이었는데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외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ㅡ누나 뱃속에 증손주 하나 더 있어요ㅡ라고 말해버린 동생에게 원망의 눈빛을 잠깐 던졌지만 외할머니는 ㅡ또?ㅡ라고 되물을 뿐이었다. 얌체같게도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않고 막 쏟아내듯 고백을 하고 싶었다. 용서를 빌고 싶었다. 나를 키워주는 동안, 죄송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ㅡ할머니 말을 안 들었더니 내가 지금 힘들게 살아. 할머니 말을 안 들어서 벌 받나 봐.ㅡ 웃으며 내가 말했다.
ㅡ.. 젊으니까.. 젊으니까 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ㅡ
할머니가,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용서받는 기분이 든 나는 나쁜 손녀였다.
나는 나를 낳고 대학을 다닌 엄마 때문에 외할머니 손에서 컸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 때문에 방학 내내 외갓집에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대수술을 받게 되고 외할머니가 집안일을 봐주러 서울에 올라와 계시다가 쭉 우리와 함께 계셨다. 바쁜 부모님 대신 외할머니가 살림을 도맡아 했고 대부분의 집 안팎일은 외할아버지가 맡으셨다. 입학도, 졸업도, 사춘기도 모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와 함께였다.
입덧을 할 때에도 찾게 되는 건 외할머니 손맛이었다.
친정집에 가면 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만이 자리를 지키고 나를 반겨주셨다.
그러다 두 분에게 비슷한 시기에 치매가 왔다. 노인네 같지 않게 집을 늘 반짝반짝하게 해 놓았던 외할머니는 더러운 걸레를 옷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빨거나 가스불을 끄지 않는 등의 실수를 하기 시작했고 나가서 산책하기를 좋아하셨던 외할아버지는 길을 잃기 시작했다.
긴 병에 장사 없다고 두 분이 버거워진 엄마를 위해 외삼촌이 두 분을 모셔가셨고 그곳에서 병세가 더 심해진 두 분은 결국 요양원에 가실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외할머니는 다시 그곳에 돌아가기 싫어했다고 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엄마와 이모와 함께 있고 싶다고 떼썼다고 한다.
그래서 낮에는 데이케어에서, 저녁에는 엄마와 이모와 지내게 된 것이다.
시집가서 살기 바쁜 딸을 위해 엄마는 내게 말을 아꼈고 이 모든 대략적인 내용은 후에 동생에게 듣게 된 것들이다.
나는 실제로 나 살기 버거웠고 그분들의 상태를 들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인가 하려는 마음도 좀처럼 먹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남편이 아이들 좀 데려가서 보여드리자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것들 조차 쉽지가 않았다. 그냥 나는 나만 생각했고 어른들이 알아서 하시겠거니 막연히 기대했으며 그분들과의 이별도 막연하게 준비 아닌 준비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별은 다가왔고 또 다가올 것이다.
문득 작년의 이맘때가 기억난다.
외할머니를 만나게 되면 말하고 싶다.
할머니, 돌아가시려거든 아주 나중에, 나중에 가셔요. 지금은 젖먹이 때문에, 매일매일 공부도 봐줘야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길이 필요한 애들 때문에 할머니 가시는 것 끝까지 볼 수가 없어요. 할머니 계시는 동안 우리 엄마가 고생하셔도, 난 지금은 안 돼요. 그러니 나중에, 우리 애들 다 클 때까지, 그때 가시려거든 가셔요. 할머니가 우리 넷째 안는 거 다들 못하게 했지만, 내가 곧 안겨드리러 갈게. 그러니 우리 애들 크는 것 좀 더 보고 가셔요. 부탁이에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