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공주다

딸아, 공주처럼 살아라

by Soo

환갑이 지난 우리 엄마 핸드폰에, 내일모레 마흔인 나의 전화번호는 "공주님"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있다.

언젠가 엄마가 노래 몇 곡을 다운받아달라며 내민 핸드폰에서 저것을 어찌저찌 발견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에게 공주님이라고 단 한 번도 불렸던 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불렸던 때가 있었더라도, 세상은 내가 계속 공주로 살 수 있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결핍에 허기졌고, 갈등에 괴로웠으며, 시련에 울었고, 한계에 버거웠다. 그리고 그것들에 여실히 내던져져 생채기가 났다.


만약 내가 "감히 내게 생채기를 내다니" 라며 마음의 매무새를 조금 더 다잡았다면,

작은 생채기에도 오만 엄살을 부렸더라면,

꾹 참고 버티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더 고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공주로 자라지 못한 엄마는 나를 공주로 키운 적이 없다.

다만 우리 엄마는 삶에 부딪혀 쪼개지고 갈라지는 딸의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으리라.

그리하여 딸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던 어느 날,
녹록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딸의 인생에 거는 마법 같은 것이었으리라.

딸아, 울지 말아라.

참고 버틸 필요는 없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고운 것만 너에게 줄게.

너는 귀하고 귀하단다.


배냇저고리에 쌓인 나를 어루만지며 말했듯

딸아, 공주처럼 살아라,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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