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부모님은 나와 내 동생을 외갓집에 맡겼다. 한두 달 남짓한 방학을 외갓집에서 보내고서야 개학을 맞아 서울로 올라갔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여름과 겨울 방학 내내 우리 남매를 보살펴주셨다.
두 분이서만 계시던 조용한 집이 우리 남매가 뛰어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해졌고 우리 남매의 방학숙제 거리로 알록달록해졌다. 우리는 달력 뒤에 그림을 그리고 광고지를 자르고 놀았다.
출출해지려는 어느 오후, 외할머니는 맛있게 익은 김치를 착착 썰고 장에서 사 오신 다진 돼지고기 한 주먹을 냉장고에서 꺼내신다.
그러고 있다 보면 부엌에서 서걱서걱 반죽을 하는 소리가 나고 이내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장 부쳐진 김치부침개를 외할머니가 건네주시며 맛이 어떠냐, 짜진 않느냐 물으신다. 대답 대신 눈 깜짝할 사이 비어버린 그릇을 보여드리면 외할머니는 그때부터 양푼 한 가득인 반죽으로 계속 김치부침개를 부쳐주신다.
외할머니가 담은 김치는 시원하고 칼칼했는데 그 김치와 다진 돼지고기는 환상적인 궁합이었다. 고기가 들어가서 약간 두툼하고 바삭한 김치부침개는 먹어도 먹어도 맛있었다. 그렇게 우리 남매는 그 부침개를 앉은자리에서 열 장도 넘게 먹었고 외할머니는 오롯이, 서서 묵묵히 부침개를 부쳐내셨다.
그러다가 내가 한 점 떼어 입에 넣어드리면, 이 부침개가 피자보다 맛있냐고 물으셨다. 피자맛을 몇 번 제대로 보지도 못한 우리 남매는 끄덕끄덕했다. 피자랑 김치부침개는 영 다른 장르인데도 외할머니는 꼭 비교를 하셨다. 나는 피자보다 이 김치부침개가 훨씬 맛있더라,라고 말씀하셨다. 본인은 피자를 한 번도 드셔 본 적이 없는데도. 나는 외할머니 말이 맞는 것만 같았다. 피자를 시켜주시는 대신 외할머니는 그렇게 가끔 김치부침개를 양껏 부쳐주셨고 우리는 정말 맛있게 먹고 나서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곤 했다.
그렇게 외갓집에서 방학을 보낸 몇 해가 지나고 엄마가 큰 수술을 받게 된 이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올라와 내가 시집가서 아이들을 낳을 때까지 함께 계셨다.
학창 시절에도 그 김치부침개를 가끔 먹었다. 일하는 엄마 대신 외할머니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외할머니는 누워계시다가도 끙하고 일어나 만들어주셨다. 세상 온갖 맛난 것에 눈을 뜬 입맛인데도 그 김치부침개는 질리지가 않았다. 함께 피자를 맛있게 먹는 순간에도, 외할머니는 입안 가득 피자를 배어물으시면서도, 난 이런 거 보다 김치부침개가 훨씬 맛있다고 하셨다. 피자가 조금 더 좋았지만 우리는 그저 끄덕끄덕 했다.
시집을 가서 요리를 시작하고 나서도 외할머니가 담근 김치를 계속 먹을 수 있었다. 하루는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어서 외할머니께 만드는 방법을 여쭤봤다. 그대로 부쳐봤는데 도무지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외할머니께 우는 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네가 한 것도 맛있지, 뭘 하시며 웃으셨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몇 더 낳았고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는 더 이상 요리를 하지 않게 되셨다.
나는 이제 김치부침개를 아주 잘 부친다. 외할머니가 담가주신 김치는 아니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입맛대로 바삭한 김치부침개를 부친다. 언젠가는 외할머니가 부쳐주셨던 김치부침개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갔었다고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김치부침개를 부칠 때마다 외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김치부침개를 맛있게 집어먹는 아이들을 보면 그때의 남동생과 내가 생각난다.
그저께 친정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옆에 계신 외할머니가 마침 정신이 맑으셨는지 전화를 바꿔주셨다.
ㅡ할머니, 나야. 할머니 아픈데 없어?
ㅡ아파도 말 못 혀. 참아야지.
ㅡ근데 할머니 목소리가 좋으네.
ㅡ좋으냐? 그래, 잘 살어라.. 애들 잘 키우고.. 잘 살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친정엄마가 말씀하시기를 외할머니는 자꾸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말씀하신다고 했는데 그 기억 속에 어린 나와 내 동생이 있을까. 젊고 건강한 외할머니가 있을까. 그때의 우리가 어떤 모습일까. 외할머니와 다음에 만나게 되면,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가 낯설어 꺼내지 못했던 옛날 얘기를 꼭 해볼까 싶다.
피자보다, 그 어떤 것보다 외할머니가 부쳐준 김치부침개가 제일 맛있었다고 말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