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 Feb 25. 2020

어디로 가오리까

역병의 창궐

몇 해 전이었다.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우리 부부는 갑자기 동시에, 거실에서 정신없이 노는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처음 느껴보는 흔들림이었다. 나는 처음에 누군가 세게 내가 앉은 의자를 흔드는 줄 알았다. 벽에 걸린 국자와 뒤집개가 옆으로 세차게 흔들리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지진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아파트 꼭대기층에 살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지갑만 얼른 들고 너나 할 것 없이 아이들을 안고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갔다. 아마도 아파트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갓난아기였던 셋째가 내 품에 안기고 3살, 5살이었던 첫째, 둘째가 각각 아빠 옆구리에 끼워지듯 안겼다.

아파트 밖으로 벗어나서 더 이상의 흔들림은 없었지만,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더 놀랐지만 티 낼 수 없었던 우리 부부가 진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그리고 그때 남편과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아이들 한 명씩 안고 도망가기도 힘이 들겠구나 하며 우스갯소리를 했더랬다.

그 이후로 나는 겁이 많아졌다. 모두 평화롭게 잠든 시간에 갑자기 미사일이 날아온다거나 핵폭탄이 터지면 어떡하지 라는 허무맹랑한, 아니 이젠 그다지 허무맹랑한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상황들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전쟁이 오늘내일 터질 것만 같다고 말하는 어느 채널의 뉴스 같은 것을 보면서 정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군용 식량으로 쓰이며 하루 한 조각이면 연명이 가능하다는, 큐브 모양의 톱밥 맛이 나는 쿠키 비슷한 것도 비싼 돈을 들여 집에 몇 개 사놓은 적도 있다.

평균보다 많은 아이들을 추슬러야 하는 책임은 도처에 도사린다. 하다못해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앞에 옆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모양새를 떨칠 수가 없다. 그러는 길에는 한 아이가 떼를 부릴 수도, 한 눈을 팔다 다칠 수도 있다. 내 눈은 쉴 틈이 없다.

어느 한 아이도 대충 키울 수가 없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병원신세를 덜 지며 키우는 편이다.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는 데 있어 위생이나 면역에 온갖 힘을 쓴다. 그 부지런함은 때로 고달프고 고되다.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던 역병은 갑자기 기세를 바꾸었다. 핸드폰에서는 재난경보가 울려댄다. 확진자의 수는 하루아침에 몇백 명 이상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 동네에 확진자가 생길까 봐 모두 겁을 집어먹고 있다.

두 손 가득 꽃다발을 안고 졸업식과 입학식을 즐겨야 할 아이들은 무대 너머에서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눈빛을 받을 기회조차 사라져 버렸다.

당장 개학을 해서 새 신발을 신고 갈날만 기다렸던 우리 첫째 얼굴에도 실망이 그득하다. 집에서 끝없이 종이접기를 하며 이건 친구 누구 줘야지 하는 우리 둘째,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왜 못 가게 하냐는 우리 셋째. 벌써 며칠 째 바깥공기를 구경도 못한 우리 막내. 나는 몸살이 왔는데 주말은 끝나지 않은 채로, 개학 연기, 어린이집 휴원 공지를 받은 나는 끙끙대며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한다. 남편은 역병 때문에 취소된 일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16개월 된 아기를 포함한 일가족이 역병에 걸렸다. 부모 손에 이끌려 종교단체 집회에 갔던 중학생도 걸려버렸다. 음식을 파는 사람들은 팔리지 않는 음식을 떠안고 주저앉아버렸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상점은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도처에 비극이 널려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뻔뻔하고 비겁한 움직임도, 역병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거룩한 움직임도 지칠 줄 모른다. 마스크는 물론, 식료품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당장 언제까지 역병을 피하기 위한 칩거생활이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 냉장고를 자꾸 들여다보며 뭘 해 먹어야 하나 걱정을 한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다.

흔히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하곤 한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던 어머니들의 모습에는 피곤과 불안이 가득하다. 감히 어디에 비하랴 싶은 고생길을 상상해본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어느 곳으로 가면 살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앞으로 앞으로 걸을 뿐인 피난길. 그저 매일매일 살아남아야 하는 지금. 피할 수 있는 곳은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끝나는 날은 오기는 올까.

며칠 째 계속 집에서 아이들이랑 복작거리며 내 눈은 믿을 수 없는 역병의 창궐이 업데이트되는 것을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튕기며 계속 보고 있다.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와 자꾸만 집어 먹게 되는 겁이 뒤섞여 오늘을 버텼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지치면 아니 될,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다들 안간힘을 쓸 것이다. 부디, 우리가 버텨낼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이 모든 난리통이 소강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짐을 이고 아이들을 업고 매고 나선 저 어머니의 고된 피난길 끝에 도착한 곳은 낙원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너를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