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짬타이거

by Soo

언젠가 아들을 둘 낳은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지 말 것. 아이들은 엄마가 남은 음식을 먹는 사람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었다면 반드시 처음에 내 몫을 덜어놓고 때를 놓쳐 조금 식었을지언정 먹다 남긴 음식이 아닌 새 음식을 먹을 것.

이미 아들을 둘인가 셋인가 키우고 있던 나는 어쩌면 당연한 이 이야기를 듣고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친구와 내가 나누는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으로 들릴까도 조심스러웠다. 나는 이미,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먹는 것이 습관화되어있었고 그렇게 밥상을 치우기 전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시작은 아이가 남긴 분유가 아까워서 그것을 홀짝였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가 매일매일 쑥쑥 자랄 수 있을 만큼 영양이 풍부한 분유, 비싸디 비싼 분유. 입안 가득 퍼지는 비릿함에 치를 떨고 에이, 관두자 하며 싱크대에 콸콸 쏟아버리는 것이 못내 속이 상해서 나는 아이들이 분유를 남기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조금씩 타서 모자라면 더 타오는 짓을 하다가 무릎의 도가니가 너덜 해졌다. 아, 잠시 다른 이야기였지만 추접스럽기는 마찬가지겠다.

정성스레 만든 이유식을 매번 잘 먹어줄 리 없는 아이가 남긴, 침에 삭고 식어 터진 이유식을 입에 털어 넣었던 많은 순간들. 아이가 남긴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는 순간들. 아이들과 남편이 식사를 마치고 흩어진 후 혼자 식탁에 앉아 남은 반찬들을 싹싹 긁어먹고 설거지를 하러 부른 배로 일어났던 순간들. 아, 물론 마지막의 경우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그들과의 겸상이 싫어서 일부러 선택한 이유도 있다.

남편은 아이들이 남긴 음식은 먹지 않지만 간혹 내가 남긴 음식은 먹는다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음식을 잘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맛있는 것을 내 입에 먼저 넣어주고 내 밥그릇에 올려주곤 한다. 어색하지만 고마운 일이다. 아내가 맛있는 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행복한 사람. 늘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지만 딱히 그런 것이 없어 건성으로 대답하는 나를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대신 내가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거나, 데리고 가서 사준다. 그리고 크나큰 만족을 기대한다. 나도 분명히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행복해하는 사람이었음을, 그는 느끼게 해 준다. 그런 이가 곁에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시끌벅적 식구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즐거운 것이 맞지만 밥 더 주세요, 이거 흘렸어요, 얘가 장난쳐요, 물 주세요 등등의 동시 서라운드가 겸해지는 식사가 더 이상은 참기 힘들어질 때가 가끔씩 온다. 외롭게 혼자 먹는 끼니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는 이들에게는 괴로운 것이겠지만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행복에 겨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신을 쏙 빼놓아 내가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도 모르겠는데 헛배만 부르는 끼니들이 지속되는 삶을 몇 년째 살고 있다 보니 혼자 조용히 우아하게 먹는 식사를 언제나 염원하게 된다.

가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찌감치 식구들을 배불리 먹여놓고 나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먹기도 하는데, 슬그머니 내 곁에 다가와 엄마가 뭘 먹는지 궁금해하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은 가끔, 내가 낳았지만 하이에나 같기도 하여 성질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도 좀 먹자!라고 이상하게도 날을 세우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다 잠 들고나서 보상처럼 야식을 즐기게도 되었지만 아침에 속이 쓰린 것이 나이가 들어 그런 건지 수월치는 않은 듯하다.

짬타이거. 지금의 남편이 남자 친구일 때 군대에 있을 시절, 면회를 가서 처음 들었던 말이다. 부대에서 잔반을 먹고사는, 거짓말 좀 보태 호랑이처럼 덩치가 큰 고양이. 곱게 화장을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아가씨는 손뼉을 치며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후 어느 날 식탁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본인을 짬타이거라고 칭하는 웃픈 삶을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엥겔지수가 엄청나게 높은 집의 주방 살림을 하다 보니 무섭게 먹어 치우는 아들들에게 혀를 내두르게 되기 시작했다. 아직 아이들이 십 대도 되기 전인데 그저 오금이 저릴 뿐이다. 먹을 것이 남을 리가 없어질 밥상을 예감하면 나의 짬타이거 생활도 머지않은 것 같은 것은 다행일까. 아니면 당장 내일부터라도, 친구와 굳은 다짐처럼 나누었던 이야기대로, 많이 늦었지만 저렇게 살아볼까나.

keyword
이전 03화엄마는 무슨 색을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