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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Oct 25. 2020

나는 너만 보면 밥을 해 먹이고 싶더라

알람 소리가 울린다.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시간에 맞춰놓은 알람을 얼른 껐다. 더 누워있고 싶지만 아이들을 얼른 내보내야 내 하루가 시작이 되기 때문에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눈뜨자마자 혼자이고 싶은 마음을, 나 때문에 아이들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된다는 나름의 철칙이라고  포장한채로.

아침에 밥상을 차려 먹일 자신은 몇 년째 생기질 않는다. 주먹밥, 시리얼, 계란 간장밥, 과일, 빵 등의 메뉴를 돌려막기 하듯 먹이곤 하는 편이다. 어쩌다 나도 아이들도 늦잠을 자버리면 빈속으로 내보내는 날도 있긴 하지만 아주 잠깐의 죄책감 외에 별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늘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시리얼로 정했다. 거실의 소파에서 팅팅 부은 눈으로 티브이를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소식을 전한다. 간혹 난 시리얼 싫은데, 라는 말이 들려올 수 있지만 엄마의 어조는 번복의 여지를 조금도 두고 있지 않다. 다행히 모두 끄덕끄덕 한다. 그릇을 내려놓고 나이대로 양의 차등을 두어 시리얼을 붓는다. 우유도 마찬가지. 아이들과 같이 앉아서 먹을 여유는 없다. 시리얼을 먹는 아이들 뒤로 옷가지와 준비물 같은 것들을 챙겨 내려놓는다.

시리얼이 눅눅해지면 맛이 없어지는데 어째 속도가 안 나는 멤버가 있다. 곁에서 채근을 몇 번 하다가 입에 떠 넣어 마저 먹인다. 아이들은 다 먹은 그릇을 개수대에 가져다 놓고 티브이에 눈을 돌리려고 하지만 엄마는 그 새를 놓치지 않고 한 명씩 차례로 세수와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들여보낸다. 임무를 마친 아이들은 바닥에 놓인 옷가지 앞에 앉아 눈은 티브이에 두고 천천히 옷을 입는다.

먼저 학교에 가야 하는 큰 아이를 준비시켜 내보낸다. 차조심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밥 남기지 말고 먹으라는 등의 말을 현관에서 다다다 뱉은 다음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두드려준다. 어느새 듬직하게 자란 큰 아이는 고개를 꾸벅하고 집을 나선다.

나머지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마저 채비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대충 눈곱만 때고 이만 겨우 닦은 나도 옷을 입는다. 아이들은 어떤 게 어울릴지 매일 고민하는 편이지만 내 옷을 집어 입을 때는 별 생각이 없다. 잠옷으로 입었던 티에 대충 겉옷을 걸치고 바지를 갈아입는다. 추운 겨울이 아니면 양말을 신는 법이 없는 발은 오늘따라 무척이나 건조하다.

킥보드를 타고 나서는 아이들의 뒤에서 걸으며 너무 빨리 가지 말고 천천히 가라고 외친다. 아이들은 엄마를 힐끔 보며 천천히 가는 척을 하다가도 금세 쌩하게 달려 어린이집 근처에 먼저 도착해서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어린이집 문이 열리자 휙 들어가 버린다. 그제야 잰걸음으로 어린이집에 닿은 나는 아이들이 신발을 벗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이들과 인사하고 선생님과 눈을 맞춘다. 아침시간에는 들이닥치는 아이들을 맞느라 바쁜 선생님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얼른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린이집을 벗어나고 싶어 아이들이 뒷모습을 보이자마자 나도 걸음을 돌린다.

집으로 곧장 가려다가 근처의 공원이나 한 바퀴 돌 요량으로 공원으로 향한다. 하늘이 좋아 이미 공원에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왔을 때는 아이들을 쳐다보느라 보이지 않던 나무도 꽃도 눈에 들어온다. 코끝에 닿는 청량한 공기가 좋아 킁킁거리며 발을 디딘다. 조금 더 속도를 내면 운동이라도 겠건만 그냥 걷던 대로 걷고 싶어 팔이라도 조금씩 앞뒤로 흔들어본다.

그렇게 공원을 두어 바퀴쯤 돌고 나서야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내 공원에서 하늘을 쳐다봤는데 가는 길에 왠지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를 켜고 하늘을 찍어본다. 조금 더 추워지면 저런 하늘도 보기 힘들어질 것만 같아 괜히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프레임의 구석에 건물 귀퉁이도 나무도 집어넣어 몇 번을 더 찍었다.

집에 다 와가는데 저 쪽에서 반가운 얼굴의 이웃이 눈에 띈다. 서로 손을 높이 들어 즐겁게 인사를 한다. 가까이 다가서서 서로 손을 부여잡고, 묻지도 않았는데 공원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을 하는 나와 애가 늦잠을 자서 이제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고 하는 그녀는 서서 또 한참을 이야기한다.

"근데 갑자기 혼자 공원엔 왜 갔어."
"그냐앙. 집에 그냥 오기 왠지 싫어서."
"그래서 아침은 먹었어?"
"아니, 애들 아침에 시리얼 말아서 주고 난 말았지."
"에이그, 그럼 집에 가서 밥 먹게?"
"나도 시리얼이나 말아먹어야지, 뭐."

그녀는 내 말을 듣더니 내 손목을 잡는다.

"우리 집 가. 우리 집에서 밥 먹자. 난 너만 보면 밥을 해먹이고 싶더라."




손목을 잡히고 몇 걸음을 걷다가 맨발로 나온 것이 퍼뜩 생각난다.
"나 집에 가서 양말만 신고 나올게. 맨발이야, 지금."

그러자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어휴, 우리 집은 지금 난장판이야. 그냥 가."

그렇게 재잘거리며 도착한 그녀의 집은 난장판이라던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있다. 깔끔하고 정갈한 성격의 그녀는 바닥에 접혀 있던 빨래 거리를 방으로 옮기며 안 그래도 깨끗한 집인데 청소기를 가지고 와 빠르게 바닥을 휙 쓸고 지나간다.

"왜 맨날 시리얼 같은 걸 먹어, 밥을 먹어야지. 왜 그렇게 맨날 대충 먹어."

엄마 같은 그녀의 말에, 엄마에게 대답했던 식의 대답을 한다.
"애들 없으면 만사 귀찮아. 뭘 차려먹고 싶지가 않네."

청소기를 내려놓고 곧장 부엌으로 간 그녀는 냄비에 불을 붙이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바쁘게 움직인다. 나도 무엇인가 거들 것이 없을까 그녀의 곁을 서성이는데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가서 앉아있으라는 말에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만나지 못한 며칠 동안의 근황과 연예계 핫이슈 같은 것을 떠들고 있자니 식탁이 음식들로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뭘 이렇게 차리냐며 감탄을 하니 있는 거 그냥 먹자며 그녀는 겸손하게 답한다.

어느새 황송하게 꽉 찬 밥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녀가 마주 앉는다. 티브이를 켜고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나오니 또 할 말이 많아진다. 벌써 시간은 아침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시장해진 우리는 떠들며 먹으며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요리 솜씨가 좋은 그녀의 밥상은 훌륭했다. 나는 할 생각도 못하는 직접 담근 김치와 끓인 국, 정갈하게 만든 반찬들을 먹고 있자니 황송한 마음이 일렁거려 목이 메려고 한다.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지?"
익살스레 웃는 그녀는 밥 많으니 더 먹고 싶으면 말하라며 덧붙인다.

평소에도 직접 만든 음식들을 나눠주거나 직접 밥을 차려주는 것을 즐기는 그녀인데 요리 솜씨가 좋은 편이 아닌 나는 도저히 내가 한 음식으로는 갚을 엄두가 안 생겨 배달음식으로 대접하거나 산 음식을 나누는 게 전부였다. 그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도저히 자신이 생기지 않아 산 것으로 대충 때우는 것이 늘 염치가 없는 느낌이었다.

밥을 다 먹어갈 때 즈음 그녀는 일어나 냉장고에서 디저트 거리를 찾는다. 그녀는 전날 아이의 생일에 먹고 남은 케이크와 커피를 준비하며 또 뭔가를 부지런히 먹일 생각을 한다. 나는 그렇게 그녀가 내어주는 음식을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 이 고마운 마음을 갚을 길은 또 산 음식을 내어 놓는 것이  것이며, 이 맛있는 음식에 내가 한 걸 내놓을 자신은 아무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배불리 채운 배를 두드리며 우리는 티브이를 봤다. 티브이를 보다가도 생각나는 수다거리를 놓치지 않으며 열심히 떠들었다. 늦은 아침을 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틈에 점심때가 벌써 훌쩍 지났다. 아이들이 오면 오후의 2차전을 시작할 그녀와 나를 위해 일어설 준비를 했다.

그녀는 쇼핑백에 무언가를 열심히 담더니 내민다. 만든 반찬과 간식거리였다. 그녀는 매번 이렇게 집에 갈 때 무언가를 들려 보낸다. 친정에서도 이 정도로 챙김을 받아보지는 못 했던 것 같은데 뭔가 울컥한 마음에 왜 맨날 이런 걸 주냐며 불퉁거려본다. 그러나 나를 다독거리듯 이내 웃어 보이는 그녀에게 잘 먹겠다며 꾸벅 인사를 해 본다.

다음번에는 내가 맛있는 걸 사리다, 약속을 하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그녀에게 나는 하필 왜 밥 해먹이고 싶을 만큼 딱해 보였나 싶기도 하여 슬몃 심경이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고맙고 고마운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이가 곁에 있으니 이만하면 영 잘못 산 것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부른 배와 두둑한 손 만치나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집에서 나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후에야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 주셨던 모든 이웃들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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