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에서 30년 넘게 살던 본가는 결국 의정부로 이사 가기로 했다. 전세로 살던 집을 연장하고 싶었지만 실패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딸이 들어온다고 했다. 오래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동네가 무너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정부로 양주로 떠났다. 지박령도 돈이 있어야 될 수 있다. 주말마다 집을 봤지만 이제 그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삼양동에 남지 않았다.
빚을 지기로 했다. 의정부에 26평 나 홀로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
나는 줄눈을 해주기로 했다. 검색을 해보니 신축 건물에 들어갈 때 줄눈은 꼭 하는 게 좋다고들 했다. 줄눈 업체를 검색해 견적서를 받았다. 그중 평가가 제일 좋은 곳에 전화를 걸었다. 샤워실 벽을 추가하려고 하니 예상 견적서보다 10만 원이 추가되었다. 벽을 포기했다. 비참했다.
동생에게 줄눈을 예약했다고 전화했다. 줄눈 예약 날짜를 말해주며 입주청소를 예약하라고 말했다. 사실 입주 청소도 내가 해주고 싶었다. 돈이 없었다. 이건 좀 슬펐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니 동생이 어제 집에 있었던 일을 하소연했다. 아빠가 난리를 쳤다고 했다. 수건을 모두 세면대에 집어넣고 물을 틀었으며,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를 거실에 부었다고 한다. 오디오와 TV를 볼륨 최대로 틀었다고 한다. 의정부에 가면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치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손님이 왔는데도 팬티 바람으로 방에서 나오려고 해서 집에서 속옷만 입고 다니지 말라고 했을 뿐인데 아빠가 그 난리를 쳤다고 한다.
동생에게 쫓아내버리라고 했다. 아빠는 집에 돈 한 푼 벌어다 준 적도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엄마가 넣었던 보험금 덕분이었다. 이사할 그 집도 동생들과 엄마가 갚아나가기로 하고 이사하는 것이다. 아빠는 도대체 혼자 어느 과거를 살고 있는 걸까. 동생들이 아직도 초등학생 중학생인 것으로 아는 걸까. 난리를 치면 끔뻑 죽을 줄 아는 태도가 우스웠다. 한글도 모르고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 걸까. 기가 찼다. 동생은 엄마에게 계속 저러면 이혼하고 내보내라 말했다고 했다. 동생을 처음으로 칭찬했다.
전화를 끊고 아빠는 이제 때릴 능력도 없어 수건이나 쓰레기 가지고 떼나 부리는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어린애 같아 징그러워졌다. 그냥 어린애도 아니고 아빠가 어린애라 생각하니 이보다 끔찍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무 쓸모 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무 쓸모 한 사람이지만 더더욱 무 쓸모 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생각을 끝내고 본가에 새벽 배송으로 남성용 수면바지를 보냈다.
애증이 아니다. 아빠는 나가면 죽을 것 밖에 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냥, 동생이 엄마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류시키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