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Oct 06. 2020

우리의 추모


 투병 막바지에 알게 된 친구가 거의 10년 만에 재발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친구 소식이었고 오랜만에 듣는 부고였다. 부고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친구의 동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제는 부고를 들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삶이란 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소식을 듣고 가만히 친구의 성격을 생각했다. 눈물이 많은 친구였다. 겁도 많은 친구였다. 그럼에도 당당한 친구였다. 

 우리는 오래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투병을 공유하고 힘을 얻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묻어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달랐고 무엇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응원할 뿐이었다. 응원한다고 썼지만 언젠가 나도 친구를 잊고 있었다. 친구도 나를 잊지 않았을까. 그렇게 투병하던 시기의 한 부분이 지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타인의 죽음은 슬픔이나 씁쓸함으로 치환되지 않았다. 수고로움. 수고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되었다. 아마 첫 죽음을 마주했을 때부터였겠지. 밤에 딸과 영상통화를 하며 웃던 아저씨가 눈동자만 간신히 굴리게 되었을 때 새벽 내내 고비를 넘기다 아침에 돌아가셔 병동 밖으로 내보내지던 모습을 봤을 때 맞은 편 침대에서 보며 고생하셨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기껏 살아남아서 닭가슴살과 현미밥 위주로 먹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내 식단을 보면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매번 재발을 위한 준비라고 말한다. 내일 당장 재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투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체력. 체력이 있어야 웃을 수 있고 체력이 있어야 먹을 수 있다. 이제 보니 요즘 유행하는 가짜 사나이를 혼자 매번 준비하는 것 같다. 

 5년이 지나면 암묵적으로 완치라고 한다지만 처음 병동에 들어섰을 때 들은 소식은 16년 만에 같은 병에 걸려 입원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매번 투병 했던 기억을 뒤로 하려고 해도 그 이야기가 매번 떠오른다. 투병 이 후의 삶이 진짜 투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휴대폰을 보니 친구의 카카오톡이 등록되어 있다. 고생했다는 말을 보내려다 그러지 않기로 한다. 친구는 언제나처럼 대답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던 시기만이라도 없던 일이 된다면 그 시기의 고통만이라도 잊혀 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전 07화 마스크를 고쳐 쓰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