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우울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던 기념일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시청 광장이었다.
지난 주말에 애인과 11주년 기념으로 더 플라자 호텔에 다녀왔다. 17층 높이에서 바라본 비 오는 시청 광장은 작았다. 고요했다. 저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부대껴 울었고 원망했고 비참해했었다. 마지막으로 시청 광장에 왔던 것은 세월호 추모행사였다. 그날도 비가 왔던 것 같다. 비가 오지 않았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분명 모두의 마음속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창문에서 멀어졌다. 기념일까지 우울해선 안됐다. 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호텔은 실망스러웠다. 냉장고는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고 화장실 컵 안에는 말라붙은 치약이 있었다. 애인에게 미안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 신경 쓰고 싶어 호텔을 예약한 것인데 모텔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화가 났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직원에게 실망스러운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인데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괜히 직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애인이 잘했다고 해줘서 마음이 조금 풀렸다.
우리는 시청 광장을 걸었다. 애인과 걷는 동안에는 울분도 비참함도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는 종각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알라딘 중고 서점에 갔다. 애인이 책을 고르는 사이 나는 의도치 않게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엿듣게 되었다. 목소리가 너무 컸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가 오늘이 고비라는 연락을 받은 것 같았다. 다른 가족에게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수신자는 병원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전화를 건 그녀도 수신자의 말에 동의를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절대 오늘 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죽음은 살겠다는 믿음을 쉽게 배반해왔다.
곧 애인과 나는 각자의 집으로 가야 했다. 우울한 상태로 헤어지고 싶지 않아 애인에게 나가자고 했다.
도처에 우울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던 기념일이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애인의 존재가 더 강했다. 애인이 없었다면 우울함에 묻혔겠지. 애인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기념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