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커버 안을 비집고 들어간 날벌레

나주 여행기 ( 3 )

by 조매영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눈이 떠졌다. 천장을 바라보며 꿈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정신들을 기다린다. 방안에 공기가 낯설다. 날벌레도 허공이 낯설었는지 갈피를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한 지 이제 10년이 다 되어 가는 데도 가끔 혼자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은 낯선 감정이 유난히 오래가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나주 가는 날이 오늘이다. 손을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는다. 지난밤 휴대폰을 보고 분명 옆에 뒀는데 그 자리에 없다. 휴대폰도 잠꼬대를 하는 걸까. 일어나 이불을 턴다. 맥없이 떨어진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8시. 기차는 11시 38분.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주변 소리가 요란하다. 예상했던 일이다. 분명 아침 먹고 천천히 출발하라 했건만 지하철 첫차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아빠가 보챘겠지. 쓸데없는 것에 부지런한 사람이니까.


- 용산역이지? 이른 시간에 마땅히 밥 먹을 곳도 없는데 뭐 하러 그리 일찍 갔어.


- 용산역 구경도 하고 그러려고 그랬지. 천천히 와.


뻔히 아빠가 보챘다는 것을 아는데 엄마는 내게 거짓말을 한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는다. 뭐 하러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 그렇다고 말하기 뭐 한 것이 젊었을 때도 일찍 일어났었다. 일찍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거나 텔레비전을 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엄마는 그나마 내가 어릴 적엔 막노동이라도 하러 갔다고 했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아빠 보고 출근하지 말라고 그 새벽에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었다던데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믿기 힘들다. 아빠가 새벽에 일을 나갔다는 것도 내가 아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었다는 것도 전생의 일이 아닐까. 엄마는 지켜보기를 잘하니까 내가 밟히고 있을 때도 뒤에서 발 동동 구르며 지켜보기도 잘했으니까. 엄마만 전생을 기억해도 이상하지 않다.


잠깐 통화를 한 것뿐인데 지친다. 다시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형광등 커버 안에 죽은 벌레들이 있다. 벌레는 저곳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어릴 적 나는 맞을 것을 알면서도 집에 들어갔었다. 알든 모르든 우리는 살기 위해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최선이었다. 몸을 뒤척이니 이불이 유난히 부스럭거린다. 날개처럼. 나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 걸까.


언젠가 엄마에게 아빠를 왜 말리지 않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말리면 더 때릴 것 같아 없었다고 말했었다. 나보다 어린 시절의 엄마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방관이 살리기 위한, 살기 위한 엄마의 최선이었으리라. 그것이 원망을 낳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계속 과거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그만 일어나 씻고 나가야겠다. 현재를 향한 날갯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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