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여행기 ( 2 )
엄마, 기차표 예매했어.
발신음이 끝나자마자 안부도 묻지 않고 변명하는 아이처럼 쉬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새로 개통했다는 기차로 예약했어. 11시 38분 차야. 집에서 아침 먹고 여유롭게 나와도 괜찮을 시간이니까 너무 일찍 나오지 말아. 점심시간 한참 지나 도착할 것 같아. 간단한 주전부리를 준비해도 좋겠다. 기차 여행의 꽃은 계란과 사이다라던데 그것들은 내가 챙길게. 그러면 그날 아침 출발하면 전화 줘.
통화 종료를 누르고 코레일 앱을 켰다. 장바구니에는 ITX – 마음이 담겨 있다. 결제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앉아 있다. 결제 전에 전화를 건 이유를 생각한다. 여윳돈이 없어 KTX를 예매하지 못하는 빈곤을 합리화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의 빈곤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빈곤을 낭만으로 덮을 필요가 있었다. 빈방처럼 공허함이 몸 안에 맴돈다.
어릴 적에 아빠에게 용돈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용돈은커녕 준비물 값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빠 고향 가는 길 더 좋은 기차를 예매하지 못한 것을 왜 괴로워하나. 늙은 모습을 떠올릴수록 선명한 폭력의 기억과는 별개로 연민이 끼어드는 것이 화난다. 나를 유난히 싫어하고 입질하던 개가 늙고 병들어 가여운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것을 보는 것 같다. 틈만 있다면 잇몸으로라도 나를 물것이다. 연민이란 틈을 절대 보여주지 말아야겠다.
괜히 기차에 대한 후기나 기사를 찾아본다. 깔끔한 외관과는 다르게 승차감이 좋지 않다는 글이 많다. 방석을 검색하다 그만둔다. 나도 외관에 속았다는 것처럼 승차감이 이렇게 안 좋을 줄 미처 몰랐다는 것처럼 행동해야지. 가벼운 역경은 여행의 묘미라며 계란과 사이다를 들어 올리고 웃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