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즐기는 엉덩이가 되기 위한 다짐

2020-11-19

by 조매영

네 시 삼십 분에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다섯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침대 옆에 내려둔 배드 테이블을 침대 위에 올린다. 배드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이 그대로 있다. 어제 퇴근하고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던 덕분이다. 어제 쓴 글을 마음속으로 조금 복기하다 포기한다. 엉성한 유머와 엉성한 짜임새 엉성한 밀도 엉성하다 못해 엉덩이 같았다. 글을 쓸 때마다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 생각한다. 엉덩이 같은 깨달음이라던가 엉덩이 같은 절망감, 엉덩이 같은 농담. 사람이 뭔가를 마주하면서 깨달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안다. 불안한 것이다. 세계와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내 모습이 들키는 것이 두렵다. 애당초 스스로에게 솔직한 적이 없으니 포장만 남았다. 어설픈 포장은 아름답지도 않고 뜯기만 거추장스럽다.

엉덩이 같은 글이라 했지만 진짜 문제는 엉덩이가 아니었다. 혼자 정장 입고 쓸데없이 진지해 문제였다.

은박지나 덕지덕지 붙여 괴상하게 꾸민 엉덩이로 부리부리 댄스(짱구의 엉덩이 춤)를 추는 게 내 스타일인데 왜 그렇게 백지 앞에서 어깨에 힘 빡 준 채 긴장하고 있을까. 즐기는 엉덩이가 될 필요가 있다. 부끄러움은 내 것이 아니라 어차피 읽는 사람들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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