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초등학교 동창의 부고 소식이 눈에 띄었다. 최근이 아니라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댓글들을 보니 낯익은 이름이 많았다. 누구는 믿지 못하고 누구는 추억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애도하는 그곳에서 나는 멍하니 동창의 사진을 봤다. 낯익은 얼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죽기 전까지 패거리와 잘 어울려 다녔구나. 동창은 불량 서클의 대장이었다.
죽었다니 애도는 해야지. 눈을 감았다. 턱이 욱신거린다. 중학교 2학년 때. 선배가 시켰다며 다섯에게 뭇매 당하던 날이 떠오른다. 같은 학교 선배도 아닌 사람이 그냥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로 시킨 것이다. 싸울 기분이 아니라고 아빠가 혈액암에 걸렸다고 말했지만 주먹질을 멈추지 않던 모습들 어떻게 잊을까. 마지막에 턱을 정통으로 맞아 오래 고생했었다.
싸울 수 없던 것이 꼭 아빠가 림프종에 걸려서는 아니었다. 집에 돈이 없었다. 혹시나 상대가 다쳐 합의를 보게 될 상황이 무서웠다. 맞으면서도 아빠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게 우스웠다. 같이 때리면 때렸지 막아 줄 사람이 아닌데. 꽉 다문 내 입은 통증보다 헛웃음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알까
눈을 떴다. 차라리 기억에 없는 사람이라면 애도하기 더 쉬웠을 텐데. 자꾸 떠오르는 기억은 애도를 할 틈을 주지 않는다. 댓글이라도 달까 하다 만다. 페이스북 창을 끈다. 욱신거리던 턱이 귀신같이 괜찮아졌다. 비록 애도는 제대로 못하지만 한 번의 폭력 가지고는 미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죽은 것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갔을 때 아프지 않고 잘 갔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