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몸이 내게 말했다.

제발 말 좀 들으라고

by 조매영

병원에서 겪었던 낯설지 않은 감각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꿈이길 빌었다. 알람 소리처럼 그만 정신 차리라는 듯이 뱃속이 부글거린다. 이불을 살필 겨를도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바지를 뱀허물처럼 벗고 그대로 샤워를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일을 다시 겪게 될 줄이야. 아는 욕이란 욕은 모두 해대며 샤워를 했다. 기운이 없어서 그런지 욕도 매가리 없이 씻겨 나갔다. 몸도 마음도 모두 씻겨 나간 자리에는 비참함만 남았다.


설날, 본가에 있을 때 아팠으면 이렇게까지 비참하진 않았겠지. 아니다 혼자 있을 때 아픈 것이 나은 것 같다. 비참함이 없는 자리에 부끄러움이 차지했을 것이다.


내 잘못이다. 일주일 전부터 몸은 식은땀과 피로감을 호소했는데 무시했다. 내가 아파봤는데 이 정도는 그냥 평상시에도 자주 그랬던 것 아니냐고 꼰대처럼 굴었다. 생각해 보면 잔병도 그렇고 백혈병도 그렇고 나는 가만히 누워 앓고 있었을 뿐 이겨낸 것은 몸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젖은 바지 위에 샴푸를 몇 번 펌프질 하고 벽을 짚은 채 발로 밟았다. 거품투성이가 된 바지를 두고 다시 방으로 향했다. 불을 켜 이불을 확인하니 이불까지는 묻은 것 같지 않았다. 방전되었다. 불을 끄러 갈 힘이 없다. 찝찝한 마음에 이불을 걷어내고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도 세상이 도는 것 같았다. 눕기 전에 유서라도 써둘걸 그랬나. 휴대폰에 메모라도 남겨야겠다고 일어날까 싶던 중 몸은 웃기는 소리 그만하라는 듯 나를 재웠다.


바지가 정말 뱀허물이라도 되는 것일까. 더 이상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부글거릴 것만 같아도 몸은 기계처럼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다시 돌아와 자기를 반복했다.


오픈 시간이 되자마자 병원을 가기 위해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던 옷을 대충 걸쳐 입었다. 택시를 부를까 하다 택시비가 아까워 걷기로 했다. 자꾸만 몸이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걸었다. 병원에서 장염 진단을 받고 죽을 먹었다. 반도 먹지 못했지만 그걸 먹고 약을 먹으니 그제야 몸은 자기 임무가 끝났다는 듯이 삐걱이지 않았다.


병원에선 최소 3일은 흰 죽만 먹으라고 하는데 한 번 밖에 안 먹었는데 벌써 물린다. 조금 괜찮아진 것 같은데 전복죽이나 쇠고기죽 같은 건 괜찮지 않을까? 가슴이 따끔한다. 몸이 째려보는 것 같다. 투병만큼 간호도 힘들긴 하지. 몸아, 네가 고생이 많다. 앞으로 무시하지 않을게. 매생이 굴죽은 안될까? 배가 부글거린다. 잡생각 좀 그만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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