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앉아 흰 화면과 눈싸움하던 중 스마트폰 진동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시계를 봤다.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늦었고 아침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 이 시간에 전화는 보통 좋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니 낯선 번호다. 더욱 받고 싶어지지 않다. 누군가의 부고 소식일까 봐. 받아야 했다. 누군가의 부고 소식일까 봐.
전화를 받자 형이다라며 주절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오는 한숨을 삼킨다. 낯선 번호는 부고 소식이 아니면 대체로 무례한 것 같다. 아니 무례해서 낯선 번호가 되었을 것 같다. 스피커 모드로 바꾸고 번호를 저장한다. 카카오톡을 켜서 친구 목록 새로고침을 누른다. 일요일의 낯선 사람이라 적은 이름이 뜬다. 프로필 사진을 누르니 양주만 있다. 이름을 눌러 친구가 설정한 이름을 본다. 온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끊고 싶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당황한 것이 티가 났나 보다. 자기가 누군지 아냐고 묻는다. 어버버 거리는데 이름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릴 적 자신이 집안의 장남이라며 폼을 잡던 친척 형이다. 거의 20년 만에 듣는 목소리인데도 반갑지 않다. 끊고 싶다.
술냄새가 수화기를 타고 온다. 4D는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 아니지 않을까. 친척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소리를 듣는다. 친척 모임을 끝낸 것이 형이잖아요? Ctrl+Z를 눌러보세요.라고 답하려다 말았다. 흰 화면을 본다. 흰 화면이 흰 화면이 아니다. Ctrl+Z를 연속으로 누른다. 지웠던 문장들이 나타난다. 다시 봐도 엉망이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지운다. 저장한 번호도 지운다.
다른 친척의 번호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맞는 번호인지는 모르겠다. 번호를 알려주면서 낯선 사람에게 번호를 알려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뜬금없이 생각난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라지. 가까운 이웃도 없어진 요즘 시대, 먼 사촌은 낯선 사람과 진배없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주고받으며 전화를 끊었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나눈 사람 중에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창문을 연다. 방 안에 가득 채운 술냄새가 빠져나가길 기다린다. 아직 날벌레가 날아다닐 날씨가 아니라서 좋다. 공기는 아직 차다. 나이가 들수록 낯선 전화 중 좋은 소식은 손에 꼽아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일까. 창문을 닫고 다시 흰 화면을 본다. 백지는 종이뿐만 아니라 화면으로 봐도 낯선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만 남게 되는 것일까.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던데 불편함을 견디는 어른이 되어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뚫고 나가라는 말을 짧게 요약한 말 같다.
그래도 나는 거저먹고 싶다. 주야장천 앉아도 뭐가 나올 것 같지 않다. 술 냄새에 나도 취한 것 같다. 좋은 소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고 들었던 것도 생각난다, 그런 김에 그만 일어나 산책하기로 한다. 너무 화면만 봤다. 화면에서 동전을 주워봤자 내가 잃어버린 것뿐이다. 사방을 살피며 걸어야지. 동전 하나처럼 마음에 드는 문장이 어디 떨어져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