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고 왔다. 반가운 마음보다 지치는 것이 크다. 씻지도 않고 소파에 누웠다. 가까운 친구일수록 먼 시절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근황 토크라고 하더니 숨도 쉬지 않고 자기 자랑을 나열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그새 고여 웅덩이를 이루었나 보다. 숨이 막힌다. 생각하지 말자. 중얼거려 보아도 붉은 국물 자국처럼 친구의 목소리는 마음 이곳저곳에 묻어 있었다. 오래간만에 들은 또래의 자랑은 자극적이다 못해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옷은 버릴 수라도 있지. 얼마나 지나야 얼룩이 지워지려나. 몸에 앉은 먼지라도 잘 씻어내야겠다 싶어 욕실로 향한다. 샴푸질을 하는데 거품이 사방에 튄다. 그는 어디서 들었는지 내 비루한 근황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도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고 요즘은 글도 다시 쓰고 있다고 제대로 한 마디도 못 했다. 사방에 달라붙은 후회가 내가 답답했는지 거품 물고 있다.
중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명상법을 복기한다. 눈을 감은 채 우주에 있다 상상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위성처럼 내 주변을 돌고 있는 질투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 슬픈 마음 양손 가득 그러모아 태양을 향해 던지라 하셨다. 머리를 닦다 말고 눈을 감는다.
선생님 위성은 없고 저만 있습니다. 사실 저는 친구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기분 상한 겁니다. 친구가 크게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근래에 겨우 잘 풀려가고 있던 것을 자랑하고 있다고 꼬아서 생각했네요. 친구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내가 부럽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냥 다 비아냥으로 들은 것 같습니다. 비아냥으로 그런 말을 할 친구가 아닌 것을 아는데도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제게 제일 비아냥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글을 쓰는데 결과는 왜 바라는 것만큼 나오지 않는 걸까요. 맞습니다. 노력이 부족합니다.
평소에는 가질 마음도 들지 않는 것들, 남이 많이 가지고 있다면 왜 비교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냥 제가 못 돼먹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질투하는 마음 분노 하는 마음 슬픈 마음 이미 제 가슴에 모두 잘 안착해 한 몸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제 안에 그 무엇도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저를 태양에 집어던지면 될까요? 자책하지 말고 노력을 하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테라포밍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겠습니다.
다시 소파에 드러눕는다. 못된 마음을 구겨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몇 번이나 구겨 던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니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사방에 구겨진 못된 마음 투성이다. 언젠가는 하나씩 펼쳐 가지고 있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발 디딜 틈도 없는 상황이 되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저장강박은 혼자 힘으로 이겨내기 힘들다고 하던데 하천이라도 종일 보고 있으면 좋아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흘러가는 것만 집중하는 사람이 될까 겁난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적당한 타이밍에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적당히 후회를 털어내고 글을 써야지. 일어난다. 일어나 불광천에 가야겠다. 오리를 보면 친구에게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카카오톡도 보내고 그래야겠다.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오리가 귀여워서 보냈다고 해야지. 뜬금없는 것이 내 매력이라고들 했다. 못된 마음도 그러모아 챙겨 가야겠다. 사실 못된 마음이랄 것들 중에 제대로 된 것은 얼마 없다. 구겨진 마음 펼쳐서 돛단배나 접어 띄어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