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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25. 2024

산에게 삐져 있었다.

 텃밭에 가던 중 눈물이 났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물이 난 이유를 생각했다. 지금 나는 우울한 걸까. 집을 나서기 전 아침도 든든히 먹었고 유쾌한 소설도 한 편 읽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할 이유가 없었다. 과거에 이 골목을 지나며 좋지 않았던 일이 있었던가. 주변을 살펴도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이유 없이 우울할 수 있다. 마음을 다잡고 텃밭으로 향하려는데 울창한 산이 보였다. 눈물이 났다.


 빽빽한 나무를 보니 떠올랐다. 나는 산을 미워했다.


 어릴 적 집 근처에는 아무도 입주하지 않던 신축 빌라가 있었다. 나는 그곳의 꼭대기층 복도를 애용했다. 차가운 돌바닥에 겉옷을 깔고 누우면 어떻게든 잘 수 있었다. 인적 드문 골목에 있는 전봇대 옆도 나쁘지 않았다. 웅크린 채 자고 있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야 했다. 자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자는 것은 구원이었다.


 집 주변에 있던 풍경 중 산만 유일하게 자리를 주지 않았다. 정자에 누워 자려고 하면 온갖 날벌레들을 이용해 쫓아냈다.


 이유를 알고 나니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간 이유 없이 찾아왔던 우울들은.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내게 보낸 편지가 아닐까. 기억해 달라고. 그러지 않으면 억울해 미칠 것 같다고.


  텃밭에 물을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많이 보인다. 신난 발걸음이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 만나기만 하면 같이 등산을 하자고 했던 친구가 있다. 매번 거절하다 친구에게 산이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친구는 산에 오르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고 했다. 그 친구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에 만나면 구체적으로 거절할 말이 생겼다. 나는 산에게 쫓겨난 사람이라고. 그래서 산에 가기 싫다고.

이전 10화 빈 집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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