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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01. 2024

빈자리가 채워지기 힘든 동네

 편의점 옆 오랫동안 비어있던 가게 자리가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다. 조그마한 펍이 생길까. 아니면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소품점이 생길까. 영원히 빈 상태로 놓여 있을 것만 같던 자리라 그럴까. 말도 안 되는 것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텃밭에 가거나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가게를 살폈다. 어느 날은 헬스장을 만드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스터디 카페를 만드는 것만 같았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인부들은 너무 바지런했다.


 가게가 아니었다. 재개발정비사업 추진준비위원회 사무실이었다. 동네에 새로운 이웃이 생기길 바랐을 뿐인데 이웃은 동네가 새로워지길 바라고 있었다.


 집 앞에 있는 버스 정류소 이름은 행운슈퍼 앞이다. 행운슈퍼가 있던 자리에는 공방이 들어왔다. 그래도 정류소 이름은 행운슈퍼 앞이다. 행운슈퍼의 최대 행운은 편의점이 생기자마자 폐업할 수 있는 용기와 정류소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재개발정비사업 추진준비위원회 사무실이 아니었다면 새로운 이웃과 정류소 이름을 가지고 한참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언덕 중간에 있던 점포들이 떠난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는 듯이 임대라고 붙여 놓지도 않았다. 빈자리를 채우기보다 빈자리를 만들기 원하는 사람이 많은 동네가 된 것 같다. 


 동네의 시작지점에 있던 굿모닝마트도 문을 닫았다. 동네에서 제일 큰 마트였다. 이름처럼 아침 인사 같았다. 그것도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인사. 폐업 예정일 보다 더 일찍 가게를 정리하고 떠났다. 굿모닝 마트가 떠난 자리에는 GS 더 프레시가 들어왔다. 아파트가 시작하는 지점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우리 동네 시작지점에 있기에는 이름이 너무 어려워 보였다.


 매일 골목들을 걷는다. 산책이라 말하지만 결국 떠나길 원하는 사람들을 피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산책을 끝내기가 갈수록 겁이 난다. 산책의 끝에는 무너진 동네가 기다리고 있다.



이전 11화 산에게 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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