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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18. 2024

빈 집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4년이 넘게 빈 집이었던 지하 집이 수리를 시작했다. 누가 이사 올진 모르겠지만 음료수나 과일을 검은 봉지에 담아 문고리에 걸어두고 싶어 졌다. 반갑다고 인사하는 쪽지도 잊지 않고 말이다.


 반가워요. 2층에 살고 있어요. 북소리나 꽹과리 소리에는 놀라지 않으셔도 되어요. 1층 집이 무당이거든요.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더라고요. 무당집에 찾아오는 귀신은 우리 집을 통해 들어갔다 우리 집을 통해 나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생각뿐이다. 하진 않을 것이다. 끽해야 마주치면 목례 정도나 하고 지나치겠지.


 그러고 보니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동네 어르신들과 햇볕을 쬐지 않는다. 자신보다 족히 두 배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과 어울리던 아빠였다. 햇볕이 더 이상 골목에 들어오지 않자, 소음 공해 시위를 한다고 아파트 공사장 앞에 돗자리를 깔고 어르신들과 시답잖은 소리나 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빠는 동네 어르신들이 엄마에게 이혼하라고 말했던 것을 모르겠지. 에이, 멍청한 아빠야. 착한 척, 수더분한 척 해도 소용없었다. 내 비명이 동네를 울렸다. 당신 편이라 생각했던 이들도 사실 당신 편이 아니었다. 동네 어르신에게 한 만큼에 반이라도 했다면 내가 당신을 그렇게 미워할 수 있었을까. 그깟 밟히는 것 정도야 못 참아줬을까. 아니다 그것 못 참겠다.


 집 밖에 나가 해바라기를 한다. 어제 비가 온 터라 날이 서늘해 햇볕이 더욱 따사롭다. 고태골 어르신들은 오르막길을 앓는 소리 하나 없이 잘도 오르내린다. 지하 집은 수리가 대강 끝난 것 같다. 언제 이사 오려나.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동네가 골로 간다의 어원인 동네인 것을 말하고 싶다. 어차피 퇴근하면 골로 가는 거니까 신나게 살라고. 괜히 너스레 떨고 싶다.


 생각뿐이다. 스스로 뺨을 때렸다. 집에 혼자 있으니 외로웠던 것 같다. 내 장난 섞인 오지랖이 아빠를 닮은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아졌다. 누가 이사 올진 모르겠지만 마주쳐서 괜히 웃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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