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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길을 잃었다.

봉산 편백나무 숲

by 조매영

엄마가 자취방에 왔다. 밥을 먹은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엄마에게 뒷산에 오르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뒷산에 있는 편백나무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봉산을 올랐다. 천천히 걸어도 엄마는 뒤에 있었다. 어릴 적 한눈을 팔다 엄마를 잃어버렸던 기억이 났다.


어릴 적과 다르게 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오후에 비가 온다더니 바람이 거셌다. 나무들이 떠오른 기억을 요란하게 빗자루질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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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내 걸음이 빠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엄마는 사방에 자라 있는 초록의 이름을 부르며 걸었다. 이름을 부르며 입맛을 다셨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인지 싱싱한 식재료에 감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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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가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니 데크길이 깔려 있었다. 데크길을 걸었다. 엄마는 연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편백향을 만끽했다. 무장애 숲길이란 이름대로 데크길은 걷기 참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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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좋았다가 걸을수록 불쾌해졌다. 봉산을 아주 놀이공원으로 만들어놨다. 의도적으로 심어 놓은 편백나무와 기존에 있던 나무를 베고 만든 데크길이 자연을 테마로 만든 놀이기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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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니 어디를 봐도 인공적이라 뭐라 딴지를 걸기도 민망했다. 이러려면 차라리 산이 아니라 평지에 조성하면 안 됐나.


감탄하다 못해 어릴 적 시골 생활을 떠올리는 엄마 앞에서 불쾌한 티를 낼 수 없었다. 구겨지는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엄마 뒤에서 걸었다.


걸을수록 풍경은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울면서 무작정 걸었던 나와 닮아 있었다. 미아보호소라도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엄마에게 배가 고프다고 이만 내려가자고 말하며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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