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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27. 2024

유별난 것이 유별나지 않은 동네

 부동산 사장과 집을 보기 위해 올라가던 길. 끝이 보이지 않던 언덕에 경악하던 중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쩍 마른 노인이 담배를 문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담배 연기에 영혼도 함께 빨려 나올 것만 같았다. 앙상한 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흰 러닝셔츠에 조금은 큰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마주친 눈 속에는 내가 담겨 있었다. 눈동자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담배 연기처럼 매캐하게 와닿을 뿐이었다.


 집을 계약하고는 노인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노인이 해바라기 하는 시간은 내가 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출퇴근할 때마다 노인이 자신의 집 문 앞에 두고 앉아 있던 나무의자와 눈이 마주쳤다. 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앉는다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이 낡은 의자. 의자와 노인은 함께 위태로워져 갔는지 모르겠다.


 회식하고 돌아온 날. 마을버스가 언덕을 올라가지 않았다. 연달아 있는 소방차 일곱 대가 언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폴리스 라인으로 막혀 있었다. 노인이 앉아 있던 의자가 검게 타 있었다. 의자 너머 집 내부는 검은 동굴 같았다. 웅성거리는 주변인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정 내 불화로 노인이 불을 질렀다던가. 집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담뱃재를 떨어트렸다던가. 가스 불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던가. 각기 다른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노인이 죽었다고 했다.


 소방수가 검게 탄 의자를 밟고 지나가는 것을 봤다. 죽은 사람은 비명을 지를 수 없다. 잿더미가 된 의자도 그랬다.


 집은 한참이나 방치되었다. 노인이 지내던 층은 내부만 원룸으로 개조되었다. 건물 자체를 하늘색으로 페인트칠해 놓았다.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 하늘색이 되니 어울리지 않았다. 하늘을 보며 검은 연기를 떠올리기 어려운 것처럼 하늘색에서 검게 그을린 흔적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애써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하늘색으로 칠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하늘색 페인트칠이 벗겨질 때마다 노인이 입었던 러닝셔츠처럼 하얀색이 드러났다. 노인은 검은 연기에 동화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하늘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늘색 다세대 주택을 지날 때마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사람들이 특이한 차림새로 앉아 담배를 피우던 노인에게 별다른 반응이 없던 것처럼.


 동네가 화재 없는 안전마을이라는 별칭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유별난 것이 유별나지 않은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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