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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20. 2024

마을은 없고 마을 이름만 남았다

 텃밭에 왔다. 공용 물조리개를 제자리에 걸어두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이 쓰레기와 오물 투성이었던 폐허였다니. 내가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부터 텃밭이어서 그럴까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산새 마을 텃밭을 검색한다. 헛웃음이 나왔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공동체 관련 교육을 받았던 마을 주민 몇과 구청이 힘을 합쳐 쓰레기를 치웠다고 한다.


 구청에서 돈을 받고 일을 한다거나, 공터를 차지하기 위해 저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거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손가락질하던 손이 늦은 밤 공터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 했던 범인일 것이다. 많이들 공터에 버렸으니까. 공터에 버려서 문제가 생긴 적도 없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이다. 라며 자기 합리화를 위해 남을 깎아내리던 이들은 잘 살고 있으려나. 잘 조성된 텃밭을 보고 나서도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분노했을까.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산새 마을의 구성원이 되었을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마을 주민만 대상으로 텃밭을 분양했었다. 분양을 알리는 전단지를 전봇대와 벽에 붙여놓았었다. 분양 당일 신청자가 모이면 제비 뽑기로 정한 것으로 안다. 텃밭 가는 길. 해바라기 하던 노인이 나를 보고 하던 소리가 기억난다. 노인네들은 도대체 어떻게 텃밭을 신청하라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온라인 신청으로 바뀐 지금 쓰레기를 정리하던 사람이나 텃밭이 생긴 것에 기뻐하던 사람 중 몇이나 텃밭에 참여할 수 있으려나. 몇 없을 것이다.



 마을 공동체는 없어졌는데 텃밭은 남아 있다. 마을은 없어졌는데 마을 이름은 남아 있다. 산새 둥지라 불리던 마을 회관은 음식물 쓰레기 배출과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하는 모아 센터가 되었다. 서울에서 마을이 가능하긴 한 걸까. 가난한 동네라고 하지만 서울에서 집주인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입자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가능할까. 애초에 지속 가능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텃밭을 본다. 산새 마을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텃밭에 물을 주고 있다. 저 중 한 명이 마을버스에서 철새 마을에 가냐고 물었던 것을 본 적 있다. 마을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떠날 것이다. 때가 되면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더 멀리 날아가게 된 철새처럼 우리도 더 멀리 더 멀리 밀려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집으로 가는 길. 마을, 마을 공동체가 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산재하다. 누리기만 하는 것 같아 새끼 뻐꾸기가 된 기분이다. 서울에서 마을을 외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더 이상 이사하고 싶지 않다. 한 곳에 머물고 싶다. 그런 마음이 아닐까. 일단 나는 그런 것 같다. 남은 전세 기간을 헤아려 보았다. 여기서 떠나게 되면 어디로 가게 되려나. 언제 우리 마을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생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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