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Apr 06. 2024

새로운 가게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어릴 적 같은 동네 살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이제는 없어진 상점과 골목 그리고 동네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까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주변은 우리가 살았던 동네가 되었다. 혼자 생각할 때는 뭉개졌던 집들이 선명해지고 얼굴 없이 고함만 지르던 옆집 할아버지는 얼굴이 선명해지는 것도 모자라 별명도 떠올랐다. 맨발로 울면서 뛰쳐나온 날엔 과자도 주셨었지. 우리는 머릿속에서 버섯처럼 자라나는 아파트들은 애써 무시하고, 잊었던 잃었던 기억을 고치고 이어 붙이며 쌓아 올리느라 바빴다.


 우리는 대화가 결국 아파트 천지가 되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는 달동네. 외로운 채 웃고 울고 뛰어다니던 달동네. 풍경이 사라지면 폭력만 더욱 쉽게 기억에 남는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도망가던 기억만 남을뻔한 것을 친구 덕분에 보수할 수 있었다. 친구는 무엇을 고쳤을까. 만족한 표정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집으로 향하는 언덕이 유난히 힘들 날이 있다. 운동을 하고 돌아갈 때보다 심력의 소모가 큰 날이면 더욱 그렇다. 마사지도 받고 나면 몸살이 날 수 있다는데 뒤틀리고 무너진 기억을 고치는 일이 쉬울 리가 있을까. 언덕의 끝을 보며 걷다 몇 번을 주저앉아 숨을 고른다. 달동네는 달과 가깝게 지내는 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산새 마을도 달동네라고 불린 적이 있다고 한다. 경사를 보면 납득이 갈 수밖에 없다. 어릴 적 나는 삼양동 달동네에서 어떻게 그렇게 뛰어다녔던 거지. 언덕 끝에서 내가 깐죽거리고 있을 것 같다. 어린 내가 나를 놀리고 도망가면 잡을 수 없겠지. 퉤. 정신은 그대로인데 몸은 너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쉬던 도중 뒤를 돌아보니 상점이 있다. 아니 지금은 창고라 부르는 것이 정확하겠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이곳은 문방구였다. 서류봉투를 구매하려고 한 번 들렸던 것이 전부였지. 서류봉투 하나에 무슨 돈이냐고 돈도 받지 않으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그 후로 동네 홍반장을 자처하며 에어컨 수리부터 철거까지 잡다한 일을 하던 남자가 주택 겸 상점으로 썼었다. 내게도 글보다는 기술을 배우라고 했었지. 기술을 배우니 자신보다 월등한 학력의 사람을 몇이나 굴리게 되었다고 했었지. 코로나가 극성일 때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굴리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쉴 수가 없었다고 코로나 검사도 예방 주사도 맞지 않고 일을 하시다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가만히 창고를 본다. 누군가는 이 집에서 산새 마을 홍반장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여기서 문방구를 떠올리겠지. 애써 친구를 만나지 않아도 건물 유리창에 붙은 스티커들이 뒤틀린 기억을 바로잡아주겠지. 


 동네에 내가 오기 전부터 상점은 없고 흔적만 남아 있던 것들이 좀 있다. 힘든 김에 조금 더 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창고는 양반이다. 아무 용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낡은 흔적들이 고된 시간을 말한다. 아등바등 견뎌오다 폐업하게 되었겠지. 남은 흔적이 풍경에서 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래서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관계를 통해 생기는 즐거움보다 견디는 일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사회를 이루는 제일 작은 단위가 가족이라고 했던가. 너무 많이 견디고 포기해서 그런 것 같다. 가끔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망한 것들을 보면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일까. 망한 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금이 간 기억들을 보수하고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다 보면 좋아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무리 터가 좋지 않아도 나도, 빈 상점들도 새로운 관계가 들어와 자리를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전 03화 벽화처럼 그냥 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