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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23. 2024

산새 마을에는 펭귄이 산다

 재잘거리는 소리에 깼다. 잠결에 산새가 봉산에서 내려온  알았다. 왼쪽 뺨을 살짝 때렸다. 말이 되는 생각을 해야지. 산새 마을에는 산새가 없다. 이 동네에 이사를 오고 나서 산새는 깃털도 보지 못했다. 비둘기만 지긋지긋하다. 창문 위 빈 공간에 자리 잡은 비둘기는 똥 좀 그만 쌌으면 좋겠다. 방충망이 엉망이다.


 정신을 차리니 재잘거리는 소리가 아이들 웃는 소리 바뀐다.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짝을 지어 줄줄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뒤뚱거리며 파닥거리는 모습이 꼭 펭귄 같다. 새끼 펭귄들은 부대끼며 추위를 견딘다고 하던데. 부대 낄 새끼 펭귄이 적어졌다는 요즘, 저 펭귄들은 괜찮으려나. 짝끼리 손을 꽉 쥐고 걷는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우리 동네는 경사 심하기로 둘째가 라면 서럽다. 지팡이를 짚고 마실 다녀온 노인,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쳐 돌아오는 청년, 부모 손을 꼭 잡고 폴짝 거리는 아이까지. 그 누구도 자신의 둥지를 향하려면 뒤뚱거릴 수밖에 없다. 왜 펭귄 마을이 아니라 산새 마을이라 지은 걸까. 빙산도 산이긴 하지. 빙산 주변에 사는 펭귄도 산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뒷산 이름이 봉산이기도 하니 봉산이나 빙산이나 발음도 크게 다르지 않네. 이리 생각하니 산새 마을이란 이름이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니네.


 아이들은 경사가 시작되는 부근에 있는 어린이집 원생들이다. 경사의 끝이자 산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놀이터를 가는 것일 테지. 불량 펭귄들도 힘들어서 못 갈 위치에 있는 놀이터. 누가 가나 싶었는데 저 아이들이 가는구나. 어린이 체력은 국가대표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구나. 창 밖은 어느새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멀리 깔깔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새는 괄약근이 없다던데 아이들이 웃음을 하염없이 흘리는 이유도 그런 것일까.

 아이들 소리를 듣다 보니, 짹짹거리는 아기 새에게 어미 새가 쉼 없이 먹이를 넣어주려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듣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소리가 있다.


 아이들이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집을 나섰다. 언덕을 올랐다. 뒤에서 누가 보면 북극곰이 펭귄을 흉내 내는 것으로 보이겠다. 저도 펭귄입니다. 저도 어린 펭귄이었던 적이 있는 펭귄이란 말입니다. 일곱 살 때 집에 돈이 없어 어린이집을 가지 못했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때 뭐 했더라. 혼자 몸을 둥글게 말아 마음의 한파를 견디거나 걷어 차여 놀이터와 골목을 배회했었다.


 놀이터가 있는 것만 알았지 처음 와본 놀이터. 원통 미끄럼틀이 두 개나 있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미끄럼틀은 그냥 타는 법이 없었다. 거꾸로 누워 타거나 거꾸로 올라가기도 했었다. 그것도 재미가 없어지면 내려가다 중간에 멈춰 내려오는 친구를 골려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놀다 보면 밤이 금방 왔다. 중간에 멈춰 한참을 기다려도 더 이상 내려오는 친구가 없을 때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내가 자세를 바꾼 것뿐인데 원통 미끄럼틀은 좋은 둥지가 되었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가로등의 불빛, 미끄럼틀을 탈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쿰쿰한 플라스틱 냄새, 놀이터의 온갖 것들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아무것도 나를 깨울 수 없었지. 자고 일어나면 무릎이 시큰하고 발목이 저렸지. 그래도 미끄럼틀을 두어 번 타고 내려오면 괜찮아졌지. 그러면 둥지는 없어지고 다시 놀이터 속 미끄럼틀이 되었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미끄럼틀에 올랐다. 공간이 많이 좁아 보인다. 이제는 굳이 자세를 고쳐 잡지 않아도 내려가지 않겠다. 아니네, 막상 타보니 잘 내려간다. 다시 탄다. 내려가다 멈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포근했구나. 재개발로 사라진 고향보다 더 고향 같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무리에서 떨어져 죽은 아기 펭귄도 원통 미끄럼틀이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슬프다. 골반이 저릿하다. 이제 어린 날의 둥지에 있기에는 몸이 너무 뻣뻣한  같다.

 놀이터는 시간이 참 빨리 간다. 마을의 야경을 본다. 펭귄들은 모두 집에 잘 들어갔겠지. 원통 미끄럼틀의 용도 중에 둥지가 있다는 것은 나 빼고 아무도 알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 집으로 향한다. 경사에 붙어 있는 집들이 미끄럼틀에 붙어 있던 나 같다. 꼭 미끄럼틀 속이 아니어도. 모두 아등바등. 아등바등 버티고 살고 있는 산새 마을. 무리에서 밀려나는 펭귄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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