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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30. 2024

벽화처럼 그냥 살기

 매일 글을 쓴다고 매일 같은 컨디션으로 쓸 수는 없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도 갈피를 잃고 고꾸라질 것이라고 확신이 드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노트북을 덮어두고  최대한 빠르게 방에 굴러다니는 옷 중 아무거나 걸쳐 입고 집을 나서야 한다. 내가 못난 탓인데 누굴 탓할까. 나를 탓해야지. 문을 소심하게 콩 소리 나게 닫고 미처 못 따라 나온 내 영혼을 생각하며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중얼거리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벙찌고 있을 영혼을 떠올린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들끓는 분노와 답답함에 화병이 나서 쓰러질 것 만 같았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문을 콩 소리 나게 닫고 방귀나 처먹어라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걷다 보니 춥다. 아무거나 주워 입은 옷이 수면바지와 반팔 차림이라니. 재수 옴 붙은 날이다. 다시 집에 들어갈까 하는데 화의 크기가 컸는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 찬 바람을 맞다 보면 좋아지겠지. 평소 같으면 따뜻한 옷을 입었어도 집 앞 골목을 조금 서성거리다 들어갔을 테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영혼도 집에 두고 왔으니, 초점을 잃은 시선으로 무작정 걸었다. 옷차림이 이러니 멀리 가지는 못하겠지만 동네나 마구 돌아다녀볼 생각이다. 어릴 때 살던 달동네가 생각난다. 나처럼 정신을 놓고 동네를 돌아다니던 사람이 매일 한 명은 있었지. 친구들과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길 좋아했지. 울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위협하는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다 다시 쫓아다니길 좋아했지. 혹시나 싶어 돌아본다. 나와 눈을 마주친 얼룩 고양이가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피한다. 우리 같은 소악마는 이제 없구나. 짐승 같은 짓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잃었던가. 무엇에 가로막혔던가. 다시 앞을 보며 걷는데 뒤에서 그들이 내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다. 우릴 보며 웃던 너도 결국 우리가 되었구나. 되지도 않는 것을 놓지 못하게 되었구나.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걷는 골목마다 벽화가 있다. 내가 이사 오기도 전부터 그려져 있던 것들이다. 도시재생사업 때 그려졌다고 하던가. 산새 마을이란 이름도 그때 붙여진 것으로 안다. 흐지부지 된 마을 커뮤니티 공간처럼 다시 거론되는 재개발 사업처럼 벽화는 상할 대로 상해져 있다. 이 벽화를 그리던 사람들은 벽화를 그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벽화가 상할 것은 생각하긴 했을까. 그냥 벽화를 그렸겠지. 그냥 최선을 다했겠지. 그래도 엉망이 된 벽화가 허울뿐인 마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좋다. 벽화는 마을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더 엉망이 된다고 해도 벽화는 지워지지 않겠지. 벽화는 재개발이 시작되고 허물어지는 순간까지 마을과 함께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난 어디 가서 살려나.


 귀가 시리다.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이 아프다. 그만 도망 다니고 그냥 좀 쓰라고 하는 것 같다. 오지 않은 결과가 내 발목을 잡고 있던 것 같다. 불편함이 아직 다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그만 들어가자. 망하는 게 하루이틀이냐. 더 이상 돌아다니다간 감기에 걸릴 것 같다. 정 안되면 온점이라도 하나 쓰고 말아야겠다. 그리고 퇴고하는 날 제일 마지막에 파일을 열어야지.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고쳐 써야지. 잘했다 고꾸라진 날에도 뭐라도 했구나. 칭찬하고 다음 글에 최선을 다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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