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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13. 2024

닭을 키우는 골목 슈퍼

 애인과 전화를 끊을 때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장소에 따라 작게도 말하고 묵음으로 말하기도 한다. 묵음으로 말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전화를 바로 끊지 않고 속으로 천천히 발음하는 것이다. 말할 수 없어 더욱 간절해지는 마음속 발음 그 잠깐의 고요, 그 잠깐의 날숨.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언어는 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간절함도 하나의 언어다.


 누군가는 낯 뜨겁게 그냥 끊으면 되지 뭐 하는 짓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부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서로 통하지 않는 말과 몸짓으로 이해하려 아등바등하는 것을 뭐냐고 묻고 싶다. 내 사랑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좋지만 사랑 이야기는 하는 것보다 듣거나 보는 것이 더 즐겁다.


 텃밭을 가기 위해 골목슈퍼 앞을 지나던 중 발이 멈췄다. 닭이 있었다. 너무 뜬금없어 눈을 몇 번 비볐다. 진짜 닭이었다. 신기한 맘에 사장님께 허락을 구할 생각도 못하고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을 찍는데 도망가지 않는다. 그저 진열되어 있는 무만 보고 있을 뿐이다. 어느새 무청 앞에 서더니 쪼아 먹기 시작했다. 말려 보려 했는데 무시당했다.


 한참을 말리고 있는데 사장님이 나오셨다. 닭을 힐끔 보더니 지인이 잡아먹으라고 줬는데 정이 들어서 키우게 되었다며 멋쩍게 웃어 보이셨다. 닭을 때리며 말리지 않아 신기했다. 닭이 도망가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말도 알아듣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알아듣긴 개풀, 사람과 살기로 마음을 먹으니 그렇다고 하셨다. 닭이 사람과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것을 알아채고 풀어놓고 키우는 것도 신기했다.

 

 사장님은 그만 먹으라고 팔아야 하는 거라고 한소리 하셨다. 닭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청만 쪼아 먹고만 있었다. 사장님은 닭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장님은 그래도 닭을 키우면서 비둘기가 마트 주변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무청만 탐하는 녀석이 아니라고 변호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정말 비둘기가 알짱거리자 닭은 고개를 들고는 비둘기를 째려봤다. 눈으로 욕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짝사랑은 아니구나 싶어 져 웃음이 나왔다. 좋은 구경 잘했다고 하며 마저 텃밭으로 갔다.


 텃밭을 다녀오는 동안 닭은 들어가 있었다. 사장님은 휴지로 산책 나온 개의 똥을 수습하듯 닭 똥을 수습하고 계셨다. 먹으려고 받아 온 것을 키우게 되고 똥까지 치우게 되는 기분은 무엇이려나. 사랑은 정말 예측불가인 것 같다. 슈퍼 안에서 닭은 사장님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떤 새는 구애의 춤을 춘다던데 닭의 눈에는 사장님이 허리를 숙인 모습이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닭은 무를 바라봤을 때보다 더 집중하고 있었다.

 

 사랑해를 묵언으로 발음하는 것이 부끄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저 둘도 그런 시기는 한 참 지난 것처럼 보인다. 닭을 향한 행동 중에 강제가 하나도 없다. 사장님이 들어가자 닭도 뒤를 따른다.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이었다. 깊은 사랑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랑하게 되는 것인가. 낯 뜨거워하지도 않고 은근히 닭 자랑하던 모습이 예사롭지 않으시더니 나보다 사랑 고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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