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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26. 2024

텃밭이 손을 타기 시작했다

 방치된 텃밭이 많이 늘었다. 방치된 텃밭은 잡초가 무성했지만 작물들도 지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내 텃밭 작물들보다 큰 것 같았다.


 언젠가 강아지를 만지려고 하니 친척이 막아섰던 것이 생각났다. 손독이 오른다고 했다. 다른 텃밭에 비해 성장이 더딘 것은 혹시 손독 때문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마치 약을 뿌린 것처럼 다른 텃밭에 비해 잡초도 벌레도 별로 없었다.


 사람이 오래 머물지 않은 집은 금방 허물어진다고 한다. 그러면 온갖 풀들이 빈자리를 채운다고 한다. 사람 들일 공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빽빽하게 채운다고 한다. 내 텃밭을 본다. 누워도 되겠다. 휑한 텃밭이 귀여워 보였다. 손독이 오른 것이 아니라 손을 탄 것 같았다. 들어오라고 들어와서 잡초 난 곳이 간지럽다고 긁어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바질 잎의 색이 이상했다. 애인에게 물어보니 낮에 물을 줬냐고 되물었다. 그랬다고 했다. 물방울에 빛이 반사되어 탄 거라고 했다. 요즘 피곤해서 늦잠을 잔 통에 새벽에 물을 주지 못했다. 출근길에 물을 줬던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그럼 죽는 거냐고 되물으려다 말았다. 죽을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냥 화나 보였다. 바질을 심은 이랑엔 잡초가 별로 없는 것이 평소에도 까칠한 성격 같은데 마땅히 달랠 방법은 생각나지 않아 진땀이 났다. 쫀 척하며 잎에 닿지 않게 조심히 물을 줬다. 쫀 모습을 보고 마음을 풀어주길 바랐다.

 감자꽃 봉오리가 올라왔다. 애인에게 자랑하니 감자에게 갈 영양분을 뺏긴다며 잘라야 한다고 했다. 미안해진 마음에 땅이라도 넓게 쓰라고 잡초를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호미로 잡초 주변을 찍고 잡초를 잡아 살살 흔들며 뽑아냈다. 개미들이 이랑에 집을 만들었는지 땅을 찍을 때마다 개미떼가 득시글거렸다. 맨손으로 잡초를 뽑고 있던 터라 개미가 물까 봐 무서웠는데 물진 않았다. 나중에 감자를 먹다 개미가 씹힐까 걱정되었다. 개미들에게 집이 무너진 김에 다른 곳으로 이사 좀 가 달라 말해봤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니 소용없는 것 같았다.

 당근이 많이 자랐다. 사교성이 많은 성격인지 주변에 자잘한 잡초들이 많았다. 당근 잎이 특이해서 다행이었다. 너무 붙어 있어 잡초 뽑기가 쉽지 않았지만 실수로라도 당근을 뽑을 일은 없어 좋았다.

 상추는 잡초를 품고 있었다. 당장 상추를 먹을 계획은 없었지만 잡초를 뽑기 위해선 수확할 수밖에 없었다. 상추를 수확하니 저번에 수확했을 때보다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에 수확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상추에게 보호받아서 그럴까. 잡초들이 무방비하게 쑥쑥 뽑혔다.      

 깨끗해진 텃밭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좋은 기분을 나누고 싶어졌다. 동네 카페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상추를 나눠 드리고 싶다고 했다. 사장님은 지금 결혼식 때문에 멀리 계시다고 문에 걸어달라고 하셨다. 첫 나눔이라 그럴까. 문에 봉지를 거는데 신이 났다.

 남은 상추를 씻는데 씻어도 씻어도 흙이 나왔다. 어릴 적엔 흙도 먹고 그래봐야 한다고 했다. 텃밭 농사 2개월 차도 안된 내가 상추가 보기엔 많이 어려 보였나 보다. 포기하고 그냥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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