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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02. 2024

텃밭 농사는 사고 수습이 반이다.

 수돗가에 놓인 물그릇을 보니 그때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집 앞 골목에 무어라 빽빽하게 적혀 있는 종이와 촛불이 놓여 있던 적이 있다. 


 아빠에게서 도망치던 중인 것도 잊고 바닥에 놓여 있는 글을 읽었다. 꼬리가 짧은 얼룩 고양이. 사람을 좋아해서 손만 뻗으면 냥냥 거리며 다가왔다는 고양이. 떠돌이 개한테 물려 죽었다는 고양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양이. 철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중년의 여자가 촛불과 빈 종이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편지를 써보겠냐고 했다. 보지도 못한 고양이에게 편지를 어떻게 쓰나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펜과 종이를 받았다. 바닥에 엎드린 채 편지를 썼다. 나는 너를 본 적이 없어. 도망가는 나를 보고 도망갔니. 나에게선 그렇게 잘 도망가면서 강아지한테는 왜 도망가지 못했니. 슬퍼하는 말을 할 것 같은데 쓸 말이 없었다. 펜과 종이를 바닥에 두고 마저 도망쳤다.


 깊은 산속 옹달샘을 메꾼 것도 인간이고 개를 버린 것도 인간이라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빈 그릇에 물을 담는다. 파묻은 옹달샘을 늦게라도 수습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본 적 없는 고양이에게 엎드려 편지를 쓸 때도 이런 기분이 들었다.


 감자에 순이 새로 난 줄 알고 뜯으려고 했는데 뿌리째 뽑혔다. 옆에 심어두었던 감자에서 드디어 작은 줄기가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헐레벌떡 다시 흙에 묻어주었다. 미안한 마음에 물도 조금 더 오래 주었다. 미안하단 말도 스무 번 해주었다. 잠깐 봤지만 작은 감자가 귀여웠다. 안 죽었으면 좋겠다. 

 보라 감자에게서 꽃이 올라왔다. 이쁜 것 같기도 하고 무섭게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했다. 한참을 뚫어지게 보다가 뜯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딴짓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던 선생이 생각난다. 영양분을 꽃에게 빼앗기면 얼마나 빼앗긴다고 그걸 또 뜯기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바질들도 죽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 그 모습에 노란 흉터가 더 마음에 걸린다. 무지함을 핑계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던가. 흉터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용서를 구하는 것 밖에 없다. 반성하며 살아야지. 누군가에게 입으로 반성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조금 더 자라면 편하게 지내라고 간격을 두고 옮겨줘야겠다.

 똥풀들이 (치커리, 쑥갓, 상추) 많이 자랐다. 씨앗부터 키운 상추는 뭔가 잎부터 여리여리해 보인다. 잎을 뜯으면 꼭 죽을 것처럼 생겼다. 쑥갓은 저번에 모종으로 심은 상추를 수확하며 한번 같이 수확해 봤는데 향이 많이 강했다. 샐러드보다는 다른 요리에 어울릴 것 같은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 큰일이다. 그나마 치커리가 무난하게 잘 자라줘서 다행이었다.

 당근 잎이 침엽수 같아서 수묵화에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당근에 물을 주니 당근잎이 빈혈에 걸린 것처럼 쓰러졌다. 괜히 잎도 줄기도 얇은 게 아닌 가보다. 텃밭은 조심할 것 천지다. 살살 달래며 일으켰다. 미워서 그런 것 아니라고 내가 멍청해서 그런 거라고도 말해주었다. 

 분명 저번주에 많이 뜯은 것 같은데 상추들이 풍성하다. 뭔가 뜯어먹을수록 자라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다. 상추를 핑계로 주에 한 번은 삼겹살을 먹었는데 잘하면 주에 두 번은 삼겹살을 먹겠다. 언젠가는 내가 상추들보다 더 풍성해져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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