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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16. 2024

텃밭에 여름과 역병이 왔다.

 집 계단을 내려오는데 땀이 났다. 정말 여름이 왔다. 손등으로 땀을 훔치고 텃밭으로 가는 길. 여름은 혼자 오지 않았다. 후회도 같이 왔다. 여름은 매년 왔는데 텃밭 농사를 시작할 땐 왜 여름이 올 것을 생각지 못했을까.


 철조망이 쳐진 자그마한 텃밭에 표지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상추 드실 분 가져다 드세요!’ 웃음이 나왔다. 표지판에 쓰여있는 글이 귀여워서가 아니라 글에 쓰여있는 마음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상추 수확은 양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과거의 내가 밉다. 몇 번 수확한 상추는 수확할수록 크고 억세게 자랐다. 억센 거야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지만 빠르게 크는 것이 문제였다. 첫 수확 때와는 다르게 비상식적으로 늘어나는 양은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매번 같은 사람들에게 나눔 하는 것도 내가 먹기 싫어서 주는 것 같게 느껴질까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내 텃밭만 있는 곳이었다면 나도 표지판을 세워 두었을 것이다.

 바질에 구멍이 나 있었다. 벌레가 먹었나. 달팽이가 먹었나. 얼굴 한 번 보고 싶어 잎을 들춰보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애인에게 물어보니 달팽이 소행이라고 했다. 애인은 내게 달팽이 트랩을 알려주었다. 맥주를 담은 그릇에 담뱃재나 커피를 뿌리면 된다고 했다.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며 바질을 봤다. 구멍을 자꾸 보니 귀여워 보였다. 술은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하고 담배는 피워본 적도 없다. 달팽이를 죽이겠다고 평소에 찾지도 않는 것을 사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물론 돈도 아까웠다. 그냥 달팽이랑 나눠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내가 맛볼 양만큼은 남겨주면 좋겠다.

 당근은 잘 자라고 있다. 물을 줄 때마다 잎들이 힘 없이 옆으로 누워버려서 놀라게 만드는데 금방 바로 서는 것이 내가 놀라는 게 재밌어서 그러는 것 같다. 다음엔 안 놀라야지 다짐을 해봐도 당근 잎이 사방으로 드러눕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기가 쉽지 않다.

 똥풀들(쑥갓, 치커리, 상추)도 이제 많이 컸다. 쑥갓 잎만 수확하다가 지나가던 어르신에게 혼났다. 줄기도 수확하는 거라고 하셨다. 줄기도 먹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줄기를 꺾는다는 것이 꺼림칙해서였을까. 수확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 텃밭을 보니 쑥갓을 수확한 집은 많이 없어 보였다. 대부분 크게 자라고 노란 꽃까지 피웠다. 꽃을 피울 때까지 그냥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러려고 심은 것은 아니니까. 열심히 줄기까지 먹도록 해야겠다.

 감자들이 상태가 안 좋아졌다. 항상 튼튼해 보였던 것들이 시들시들하니 마음이 더 쓰였다. 애인 텃밭도 감자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감자 역병이 온 것 같다고도 했다. 감자 역병이 무엇인지 몰라 검색하니 우리 감자들의 증상과 흡사해 보였다. 

결국 밤이라도 감자를 모두 수확하기로 했다. 우리 텃밭만 문제가 되면 상관없는데 다른 텃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밤에 들린 텃밭은 당연한 말이지만 어두웠다. 조명이 하나도 없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텃밭에 가서 감자를 하나 둘 캐는데 눈물이 났다. 감자알이 너무 작았다. 팔에 모기들이 서너 마리가 달라붙었다. 그럴 리 없지만 감자를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 허우적거리며 모기를 내쫓고 마저 감자를 캤다. 캐는 것마다 작아서 더욱 크게 허우적거렸다. 모기와 함께 미안한 마음도 내쫓고 싶었다.

 감자를 뽑은 자리에는 서리태를 심게 될 것 같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고 애인이 감자를 뽑은 자리에 서리태를 심는다고 해서 따라 하기로 했다. 마땅히 생각나는 작물도 없으니 다행이었다. 서리태는 잘 자랐으면 좋겠다. 찾아보니 서리태도 역병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심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법도 알아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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