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영화를 보다 또래와 처음 싸운 날이 기억났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이었다. 하교 시간 싸움이 있다 길래 구경을 갔던 날이었다. 학교 운동장 변두리에 있던 모래사장에 도착하니 싸움은 끝나 있었다. 아쉬워하며 돌아서자 한 아이가 내게 달려들었다. 소위 일진이었던 아이였다. 언젠가 그 아이가 괴롭히던 아이를 막아줬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눈에 났던 것 같다. 괴롭힌 당한 아이가 나와 친했다거나 불쌍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또래의 괴롭힘이 가소로웠을 뿐이었다. 흩어졌던 아이들은 금세 울타리처럼 우리를 둘러섰다. 아이들이 고함치고 웃었지만 소리라기보다 벽의 무늬 같이 느껴졌다. 일진이 주먹질을 할 때마다 아빠가 생각났다. 네가 아무리 때려도 아빠가 때리던 것보다 아프지 않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굳이 주먹질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훨씬 덩치가 컸다. 일진의 손목을 잡으며 설득했다.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일진은 화만 냈다. 때리고 싶지 않았다. 밀어내고 자리를 피했다. 쫓아오는 일진을 밀어내며 가는 길이 슬펐다. 아무리 생각해도 때릴 수가 없었다. 가소로웠지만 내 선택지에는 도피뿐이었다. 눈이 돌아간 사람은 대응하는 것보다 자리를 피하는 게 좋다고 몸으로 배웠다. 언제나 때리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 아니라 아빠의 것이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화내고 싸우더니 친해졌다. 돈독한 사이가 된 모습이 신기했다. 일진과 나는 친해지지 못했다. 오히려 중학생 때 일진은 패거리와 함께 나를 때렸다. 아빠가 림프종에 걸렸을 때였다. 집에 우환이 있어 싸우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주먹 질 뿐이었다. 아빠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차피 중학생인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연민을 느껴 보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어림도 없었다. 참 많이 맞았다. 그래도 견딜 만은 또 했었다. 역시 아빠가 때리는 것보다 아프지 않았다.
처음 싸우고 집에 가는 길 아빠에게 잠깐 고마웠다. 아빠가 때린 게 단순히 더 아팠을 뿐인데 일진의 주먹질이 아프지 않은 게 아빠 덕분인 것 같았다.
참 순수하다 믿고 싶은 멍청한 나다.
아빠는 도피할 핑곗거리도 되지 못했다. 괜찮은 건 다 맷집 덕분이었다. 맷집도 아빠 덕분이라면 할 말이 없지. 영화를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