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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an 21. 2021

아빠에게 잠깐 고마웠던 적이 있다.



 액션 영화를 보다 또래와 처음 싸운 날이 기억났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이었다. 하교 시간 싸움이 있다 길래 구경을 갔던 날이었다. 학교 운동장 변두리에 있던 모래사장에 도착하니 싸움은 끝나 있었다. 아쉬워하며 돌아서자 한 아이가 내게 달려들었다. 소위 일진이었던 아이였다. 언젠가 그 아이가 괴롭히던 아이를 막아줬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눈에 났던 것 같다. 괴롭힌 당한 아이가 나와 친했다거나 불쌍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또래의 괴롭힘이 가소로웠을 뿐이었다. 흩어졌던 아이들은 금세 울타리처럼 우리를 둘러섰다. 아이들이 고함치고 웃었지만 소리라기보다 벽의 무늬 같이 느껴졌다. 일진이 주먹질을 할 때마다 아빠가 생각났다. 네가 아무리 때려도 아빠가 때리던 것보다 아프지 않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굳이 주먹질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훨씬 덩치가 컸다. 일진의 손목을 잡으며 설득했다.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일진은 화만 냈다. 때리고 싶지 않았다. 밀어내고 자리를 피했다. 쫓아오는 일진을 밀어내며 가는 길이 슬펐다. 아무리 생각해도 때릴 수가 없었다. 가소로웠지만 내 선택지에는 도피뿐이었다. 눈이 돌아간 사람은 대응하는 것보다 자리를 피하는 게 좋다고 몸으로 배웠다. 언제나 때리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 아니라 아빠의 것이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화내고 싸우더니 친해졌다. 돈독한 사이가 된 모습이 신기했다. 일진과 나는 친해지지 못했다. 오히려 중학생 때 일진은 패거리와 함께 나를 때렸다. 아빠가 림프종에 걸렸을 때였다. 집에 우환이 있어 싸우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주먹 질 뿐이었다. 아빠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차피 중학생인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연민을 느껴 보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어림도 없었다. 참 많이 맞았다. 그래도 견딜 만은 또 했었다. 역시 아빠가 때리는 것보다 아프지 않았다.     


 처음 싸우고 집에 가는 길 아빠에게 잠깐 고마웠다. 아빠가 때린 게 단순히 더 아팠을 뿐인데 일진의 주먹질이 아프지 않은 게 아빠 덕분인 것 같았다.

 참 순수하다 믿고 싶은 멍청한 나다.

 아빠는 도피할 핑곗거리도 되지 못했다. 괜찮은 건 다 맷집 덕분이었다. 맷집도 아빠 덕분이라면 할 말이 없지. 영화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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