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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04. 2021

아빠의 친구가 돌아가셨다

 백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빠에게 전화 내용을 전하며 표정 변화에 집중했다. 친할머니나 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바닥을 뒹굴며 울었다던데. 절친한 동네 친구의 죽음에는 어떤 반응을 할지. 


 바닥에 뒹굴지는 않아도 울진 않을까 싶었는데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노인네가 오래 살긴 했다고 중얼거리더니 텔레비전을 다시 봤다. 


 백구 할아버지는 하얀 진돗개를 키우던 동네 할아버지였다. 집이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여서 허구한 날 찾아와 아빠와 맞담배를 피며 시간을 보냈었다. 친구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던가. 할아버지와 아빠는 나이 차가 마흔 살은 더 났던 것 같은데 죽이 잘 맞았다. 할아버지는 술버릇이 고약해 집에 사기그릇이 남아나질 않기로 유명했었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동네가 재개발을 시작하자 백구 할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의정부로 이사 갔다. 서로 아쉬운 표정으로 이별을 했었는데.


 우정도 사랑도 쌍방이 평등하긴 어렵다고 했다. 백구 할아버지가 아빠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재개발이 되기 한참 전 밤새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 간간이 백구 할아버지 목소리도 들렸지만 아무도 나가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나가 보려다 아빠에게 뺨을 맞았다. 술주정 피는 거라고 했다. 아빠는 술 안 먹고도 술주정 부리듯 뺨만 잘 때리면서. 내로남불이라고 했던가. 

 다음 날 나가보니 현관문 앞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저녁에 백구 할아버지는 머리에 붕대를 맨 채로 놀러 오셨었다. 술 먹고 백구를 때리다 물렸다고 했다. 자기 집에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다고 한다. 

 몸 상태를 묻고는 문을 두드린 것을 자느라 몰랐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아빠가 가증스러워 보였다.


 백구 할아버지는 백구 없는 백구 할아버지가 되었다. 백구는 아빠가 건강원에 데리고 가서 토막 내 가져왔다. 사람을 문 개는 키워선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아빠가 고집한 일이었다. 마당 한 편에서 핏물을 빼기 위해 고무 대야에 담겨 있던 백구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차라리 아빠를 물었으면 좋았을 텐데.

 매번 보신탕을 끓이면 냄비 가득 가지고 가셨던 백구 할아버지였지만 백구로 끓인 보신탕은 가져가지 않으셨었다.

 

 얼마 안 있으면 백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의정부로 본가도 이사를 간다. 아빠는 의정부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백구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의정부에 계속 있으셨어도 가고 싶지 않다고 했을까. 모르겠다. 아빠가 아주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폭력도 무정도 지울 수 없으니 내게만 그랬다 생각하고 싶다. 

 나는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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